도시민 움직여야 고향세 작동
지역 스스로 허리끈 졸라매고
살아남으려 최선의 노력할 때
돕겠다는 마음 우러날 수 있어
기금 투명하게 사용 신뢰주고
참여자 보람·긍지 갖도록 해야
이번 추석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00여명을 오르내리던 지난해에도 귀성객이 3226만명이었다는 통계를 보면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듯하다. 평소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나 어슬렁거리는 적막강산, 간혹 허리 굽은 할머니나 볼 수 있던 농촌마을에 추석이 되면 산란기를 맞은 연어처럼 객지에 나갔던 이가 고향을 찾아온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소멸 위기의 농촌을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차에 출향 인사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역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내년 초 시행할 ‘고향사랑기부금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제도는 특정 지방자치단체를 지정해 고향사랑기금으로 10만원을 기부하면 연말정산시 소득세를 그만큼 공제(10만원 이상 기부금의 16.5%)해주고 지자체는 기부금의 30% 범위에서 답례하는 제도다. 기부자 입장에선 10만원을 기부하고 13만원 상당의 혜택을 받으니 손해가 아니고 지자체에선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고 답례품으로 지역농특산물이나 관광상품을 제공해 지역을 알릴 수 있다. 일본은 14년 전 비슷한 고향납세제도를 도입해 2020년엔 6724.9억엔(한화 약 7조1486억원)이나 모금했다니 인구감소와 재정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 입장에선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니다.
7월말 한 조사 결과 고향사랑기부금제를 아는 사람은 응답자의 26%, 기부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은 39%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내용을 아는 국민이 많지 않고 기부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자도 적어 어렵사리 마련했던 농어촌상생협력기금처럼 자칫 용두사미가 될까 우려가 든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한·중 FTA 비준 때 산업간 이익불균형을 바로잡고자 무역이득공유제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논란 끝에 여·야·정 합의로 2017년부터 10년간 1조원의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모금은 목표액의 25%에 불과하고 그마저 기업이 해오던 사업을 포함한 금액으로,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업이나 국민이 참여하는 농어촌상생기금이나 고향사랑기부금제의 성패는 농촌을 살리고 고향을 구해야 한다는 출향민과의 공감대 형성과 애향심에 달렸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 집안을 일으키려고 객지에서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겪으며 꿈에서조차 망향가를 부르던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도시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아버지 고향에 무슨 애틋한 마음이나 사랑이 있겠는가? 결국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고향사랑기부금제가 작동하려면 도시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해 보라. 시골에는 눈먼 돈이 많아서 쓸데없는 토목공사를 벌이고 선심성 보조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기금을 내겠는가?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 위에서 지역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허리끈을 졸라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그래서 출향민과 연고자 등 지역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렇게 모금한 기금이 꼭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사용된다는 신뢰를 주고 그 결과 참여자들이 보람과 긍지를 느낄 때 제도가 지속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돈이 없어 미뤘던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취약계층 지원,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등 숙원사업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답례용 지역특산품을 개발하고 농촌관광과 도농교류를 통한 관계인구 확대를 통해 지역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고향사랑기부금제의 취지이자 운용의 핵심이다. 성공 여부는 추석마다 고향을 찾는 출향 인사의 마음을 얻는 데 달렸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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