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보릿고개와 식량안보

입력 : 2022-05-25 00:00

코로나·전쟁 영향 곡물값 불안 국내 식량 공급 체계에 빨간불

어릴 때 보리 익지않은 초여름 양식 모자라 나물죽으로 연명

곡물자급률 제고 쉽지 않은 일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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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접어들면서 밤에 소쩍새가 운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보릿고개에 소쩍새가 ‘솔쩍’ 하고 울면 흉년이, ‘솔쩍다’라고 울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가을 양식은 떨어지고 햇보리는 익지 않았을 때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던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은 보리가 익어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다. 보리밥 대신 빵을 먹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의 중요성은 변하는 게 아니다. 식이위천(食以爲天)이라고 국민이 하늘처럼 여기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농업 역할이자 국가 책임이다.

코로나19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곡물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59.3, 곡물가격지수는 170.1로 치솟았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밀·콩 등 곡물가격 급등은 이를 원료로 하는 축산업·식품산업 경영,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늘려 생계를 압박한다. 나아가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식량이란 단어에 안보란 말을 붙이는 것이다.

식량안보는 국민에게 안전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적기에 공급할 때 지켜진다. 하지만 국내 생산 여력이 떨어지고 국제 곡물시장마저 불안해지면서 식량 공급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새 정부도 식량주권 회복을 강조하면서 2027년까지 밀과 콩 자급률을 각각 7%, 37.9%로 높이고 이를 위해 전문생산단지 확보, 공공비축 확대, 우량농지 보전·지원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식량안보에 대비한다니 다행스럽지만 워낙 어려운 과제라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도 없지 않다.

필자는 2013년 장관 취임 후 국민공감농정위원회를 열고 ‘안전한 농식품의 안정적 공급’을 주요 농정과제로 선정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려고 기존 정책을 바탕으로 답리작(논에 벼를 재배한 다음 겨울작물을 재배하는 방식) 확대, 유휴지 활용 맥류·사료작물 재배, 밭 식량산업 중장기 대책, 콩유통종합처리장·맥류건조저장시설 지원, 간척지 효율적 활용, 쌀 관세화 등 새로운 정책을 동원해서 열심히 뛰었지만 곡물자급률을 2013년 23.2%에서 2016년 24.4%로 1%포인트 올리는 데 그쳤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막 보리가 패기 시작하니 지금이 보릿고개다. 식량이 부족해 나물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아이들은 찔레순을 꺾거나 잔대를 캐 먹곤 했다. 그러던 우리가 어떻게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됐을까? 아마 생산기반 정비와 품종 개발·보급, 농자재산업 육성과 지원, 수매비축 도입 등으로 농가 경영을 안정시키고 소득을 보장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식량문제를 정말 중요하게 인식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된 1962년 이후 20여년간 경제 정책 핵심과제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식량증산 정책을 추진했다. 예컨대 신품종 개발·보급을 위해 연구지도직 공무원을 1960년 1502명에서 1970년 6995명으로 늘렸고, 생산기반 정비와 개간·간척 등을 위해 농업진흥공사를 설립했으며 절대농지를 지정해 우량농지를 보존했다. 혼분식을 장려하는 절미운동을 추진하고 1974년에는 청와대에 식량증산기획실을 설치해 10여년간 지역별 생산 목표를 할당하고 식량증산 유공자와 유관기관을 포상하기도 했다. 보릿고개에서 벗어나려고 국가적 추진체계를 확립하고 책임 있는 공직자의 열정, 농민의 노력, 그리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더한 결과 1977년 마침내 주곡자급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도 식량안보를 간절히 염원하고 역량을 결집해서 지속적으로 대응한 결과인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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