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농가월령가와 농민을 생각하는 지도자

입력 : 202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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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달라도 농사 잘돼야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살아

농업 투자 약속한 당선인은 농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급한 난제들 해결에 힘써야

 

꽃샘추위가 어찌나 기승을 부리던지 봄이 오는 것을 잠시 잊고 지냈는데 다음주면 벌써 오동나무 꽃이 피고 종달새가 울며 무지개가 보인다는 청명(淸明)이다. 이때면 물꼬를 치고 도랑을 내 논농사를 준비하고 밭에도 온갖 곡식이며 채소를 심는다. 겨우내 기다리던 단비까지 내리니 바야흐로 농사일이 본격 시작됐다. 올해는 어머니가 다쳐서 정신 없었지만 마늘과 양파의 줄기를 구멍 뚫린 비닐 위로 끌어올리는 유인작업을 끝낸 후 복숭아며 자두·포도 등 과실나무의 웃자란 가지를 잘라내고 퇴비를 뿌렸다. 내일은 완두콩이며 감자도 심을 작정이다.

‘삼월은 모춘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당전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화간의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 기니 미물도 득시하여 자락함이 사랑홉다’ 정학유가 읊은 <농가월령가>에서 생명체들이 때를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 같다. 농가의 3월은 못자리를 준비하고 보리밭 김매기며 채소밭에 씨앗 넣기, 과실나무 접목과 누에 칠 준비며 장 담그는 일까지 잠시도 손을 놀릴 수 없이 바쁘다. 농사는 특히 심고 거둘 때가 있어서 이때를 놓치면 한해를 허탕치기 때문이다.

‘어와 내 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일 년 내내 힘들지만 그 가운데 즐거움 있네. 위로 나라를 받들고 아래로 부모를 봉양하니 형제 처자 혼인 장례 먹고 쓰고 하는 것을 농사짓지 아니하면 돈 감당 누가할까.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중략) 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느니 계절도 가고 오고 농사도 풍흉 있어 홍수 가뭄 바람 우박 없기야 하랴마는 열심히 힘을 쏟아 온 가족이 한마음 되면 아무리 흉년이라도 굶어 죽지 않으리니 내 고향 내가 지키고 떠날 뜻 두지 마소’ 시대는 다르지만 결국 농사가 잘돼야 가족들이 살고 지역공동체도 지속가능하다는 말이다.

선거전이 끝이 나고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사는 농민’을 슬로건으로 내건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농림축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자 미래 성장산업으로 농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늘리겠다”던 공약에 환호했지만 한편 정말 그렇게 이해하고 실천할지 반신반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야 후보 모두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소득과 행복한 삶,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며 농업직불금 확대, 청년농 육성, 지역개발 등을 약속했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당선자가 선출되니 시작부터 잡음이 그치지 않는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다투다보면 한시가 급한 난제들도 뒤로 밀리고 결국 공약이 흐지부지해질까봐 염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농가월령가>는 철따라 해야 할 농사일과 농촌의 풍속을 기록한 것으로 농업기술뿐 아니라 농촌에서 살아가는 생활지침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쓴 정학유는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이다. 폐족 신세가 돼 공부를 해도 과거조차 볼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을 삭였다. ‘어와, 우리 임금님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시어, 농사를 권장하시는 말씀을 방방곡곡에 알리시니, 슬프다 농부들이여, 네 몸의 이득은 고사하고 임금님의 뜻을 어기겠느냐?’며 권농에 앞장선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버지가 귀양살이 중이지만 당파의 이해보다는 농업·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게 먼저라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어제는 농협에 비료를 사러갔더니 요소비료 한포대에 2만8700원으로 지난해보다 3배 정도 올랐다고 한다. 영농 규모에 따른 보조 한계로 겨우 한 포대밖에 배당이 안돼 나머지는 큰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인건비가 하루 8만원에서 15만원까지 치솟았는데 올해는 더 오를 것이라 한다. 엊그제 이웃마을 숙모가 오셔서 고추밭에 비닐 씌우는 일손을 도우며 한 걱정하셨다. 관리기로 골을 타고 비닐을 덮어주던 마을 분이 돌아가시니 대신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기계며 기름값은 또 얼마나 올랐나. 당장 영농에 들어가는데 천정부지로 오른 인건비·농자재값에 어떻게 농사를 지으란 말인가. 정약용 선생 부자(父子)처럼 농민들의 삶을 생각하는 지도자가 아쉽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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