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만파식적의 염원과 국민 통합

입력 : 2022-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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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선거전 거쳐 정권교체 국내외 여건 혼란스러워 걱정

삼국유사 ‘만파식적’ 이야기

한손으로 못 부는 피리 통해 삼국통일후 ‘백성 화합’ 강조

국민 뜻 모아 나라 변화시켜야

 

전쟁 치르듯 치열한 선거를 거쳐 야당후보가 승리하는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투표 결과에 승복한다’는 말은 했다지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거대 여당이 산적한 난제 해결에 얼마나 협조할지?

선거 과정을 보면서 문득 삼국통일 후 혼란스러운 국민들의 마음을 잡았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떠올랐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온갖 질병이 나으며, 또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비가 그치며, 바람이 잔잔해지고 파도가 가라앉아’ 오만가지 근심이 사라졌다니 얼마나 신통한 일인가!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다듬겠지만 국내외 여건이 만만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 심화와 함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저성장·고물가로 청년들이 일자리를 잃고 국민의 삶이 팍팍해진 지 오래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지방소멸과 균형발전, 국민 삶의 질과 복지 등 많은 약속을 했지만 무너진 공신력과 도를 넘은 진영간 갈등 속에서 공약이 제대로 실천되고,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선진국으로 도약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660년 신라의 태종무열왕이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뒤를 이은 문무왕은 17년간 긴 전쟁 끝에 고구려까지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했다. 건국 이래 700여년간 무려 460여회의 치열한 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형성된 것이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상대국 왕까지 죽이면서 치열하게 싸우던 삼국 백성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넓어진 영토를 고르게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제였을까. 신문왕은 공신들의 횡포와 백제·고구려 유민들의 소요로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일관(日官)이 ‘동해에 섬이 하나 떠내려왔다’ 하여 바닷가에 가보니 용으로 변신한 아버지 문무왕이 그 섬에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나라가 화평해진다’고 했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이야기는 오랜 전쟁에 지친 국민의 간절한 소원이자, 한손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는 피리의 이치, 즉 국민 통합으로 통일신라의 기틀을 확립했다는 교훈이다.

정말 그 피리 소리만 듣고 밤낮으로 싸우던 나라가 평온해지고 국론을 통일해서 천년 사직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 지도자의 비전과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만파식적을 준 문무왕은 통일전쟁을 완수하고 죽으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동해바다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신문왕은 즉위 후 장인까지 처형하며 통일전쟁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공신세력을 제압하고, ‘9주 5소경’으로 지방행정과 군제를 재정비했다. 녹읍을 폐지하는가 하면 전쟁 후 서먹하던 당나라와 외교를 재개하고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통합과 혁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공익직불제 예산을 5조원으로 2배나 늘리고 식량주권 강화와 청년농 육성, 경영부담 경감과 마을주치의제도 등 농업·농촌 분야에 이런저런 약속을 했다. 인수위가 가닥을 잡고 정책 추진의 밑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명심할 것은 예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기존 정책들이 국민 염원을 이루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 점검해서 투자 효율성을 높이도록 정부와 공공부문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은 재정투자와 공공부문의 노력에도 농가인구와 경지면적이 크게 줄어들고 농사짓기 힘들고 농업소득이 정체돼 있다는 말은 현재의 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뜻이 아닌가?

국민 뜻을 모아 나라를 변화시키는 데 5년 임기는 길지 않다. 그런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에 자원을 집중하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비상한 개혁 의지와 치밀한 계획, 그리고 부단한 실천이 필요한데 이는 국민 통합과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신문왕이 국민 통합을 통해 민족통일의 염원을 실현했듯이 경제침체, 진영간 갈등으로 지친 국민의 시름을 달래고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만파식적 소리를 듣고 싶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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