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통령·지자체 선거 있어 지도자의 약속 이행 살펴보고
누구를 뽑을지 신중한 판단을
농업 혁신·경쟁력 높이기 보단 현금성 지출에 많은 비중 차지
공감 확산 위한 자구노력 필요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더니 꽁꽁 언 겨울에도 어느덧 시간은 흘렀나보다. 바람이 흔들고 간 마당 한구석 매화꽃이 팥알만큼이나 부풀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일년 농사 봄에 달렸으니 모든 일 미리 하라. 봄에 때 놓치면 추수 때 낭패 보네’란 말을 실천하듯, 어떤 이는 전정가위를 들고 과수원으로 가고 또 다른 이웃은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모종을 돌본다. 며칠 전 입춘(立春)이 지났으니 아직은 날씨가 차지만 꽃 피고 새 우는 봄도 멀지 않았으리라.
이처럼 봄은 얼어붙은 대지에 생기를 돌게 하고 죽었다 싶었던 나무에서 새싹을 움트게 한다. 훈풍이 불고 비라도 내리면 사람들도 저마다 새해 희망을 담은 입춘첩을 붙이고 마음을 다잡는다. ‘폭죽 소리 속에 한해가 저물고 봄바람에 실린 온기 술 속으로 스며든다. 집집마다 둥근 해 비추니 낡은 부적을 새것으로 바꿔단다’. 왕안석이 지은 <원일(元日)>이란 시구다. 봄을 맞는 시인의 감회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엿보인다.
올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는 해라 어느 해보다 시끌벅적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년간 대통령·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내걸었던 약속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냉정히 살펴볼 기회가 왔다. 국력이 얼마나 신장되고 지방은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국민의 삶은 윤택해졌는지 돌아보고 새로운 지도자는 누구를 선택할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줄을 잘 서 재미를 본 사람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이대로 죽 지속되면 좋겠지만, 무너진 법과 질서에 좌절하고 높은 물가에다 세금 폭탄까지 고통으로 생업을 포기하며 방황했던 이들에겐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혹 국가 발전과 국민들의 삶보다는 눈에 띄는 이벤트나 홍보로 자리보전이나 하며 편을 가르고 뒤로는 내로남불 엉뚱한 짓을 하며 마치 황제처럼 행세했던 지도자가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흙에 묻혀 사는 나도 이번 입춘에는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농업·농촌 부활을 빌었다. 수시로 북한이 무력도발을 하고 사사건건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과연 국방과 외교안보는 안전한지,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우리 농업이 어떻게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할지,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란 사회적 문제를 무리 없이 해소하며 불균형 성장을 극복할지, 식량은 턱없이 부족한데 인건비와 농자재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농사를 지어도 팔 곳이 없는 농산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걱정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정분야에서도 여야 대선후보가 공약을 발표했다. 국가 전체 예산 중 농림수산분야 예산을 5%대로 확대하고 농어촌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농업직불금을 5조원으로 2배나 확충하고, 비료값 차액도 내주겠다고도 한다. 청년농을 육성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는 내용도 있지만 농업구조를 바꾸고 인프라를 확충해서 경쟁력을 높이기보단 우선 눈에 띄는 현금성 지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표심은 얻을지 모르나 과연 지속적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후 공익형직불제란 이름으로 얹어준 1조원대 세수 지출에 얼마나 공익이 늘어났는지, 검증되지 않은 비효율적인 농정조직과 추진체계를 방치하고 다시 현금을 나눠준다고 할 때 국민이 흔쾌히 동의할지 모르겠다.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얼마간 돈을 나눠주는 선심성 공약보다 정부 역할을 재정립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 국민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 정말 시급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의 큰일과 절박한 과제를 골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국민 뜻을 모아 일관성 있게 추진할 때 세상은 변하게 된다. 조선시대 방납 폐해를 없애기 위해 특산물 대신 쌀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했던 ‘대동법’도 1608년에 시작됐지만 100여년간 시행착오 끝에 강원도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 지방과 농업·농촌을 살려보자는 희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후보자 철학과 실천의지는 물론 잘 준비된 계획과 국민공감이 중요하다. 그 실마리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진정성 있는 자구노력에 달렸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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