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입력 : 2022-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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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빈곤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자고 만든 대학생 비영리 민간단체 ‘십시일밥’이 있다. 자원봉사 학생들이 땀 흘려 기부한 공강 1시간이 누군가의 밥 한끼가 된단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학생식당에서 배식, 식기 세척, 홀 정리 등의 봉사를 하고, 그 대가로 받은 학생식당 식권을 밥 못 먹는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그동안 6234명이 6만1866시간을 기부했고, 식권 신청자 3807명에게 10만1442끼를 전달했다. 십시일밥 사무국에는 12명의 청년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

박소연 작가의 단편소설 <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는 가슴 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한 청년의 이야기다. 인생은 한번뿐이니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구를 보면서 주인공은 피식 웃는다. 부모님의 해외 의료봉사에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봉사에 마음을 빼앗긴 주인공은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비영리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곳이 직장이 되면서 가슴 뛰는 일은 스트레스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계속되는 후원금 실적점검 회의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부족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굿즈(기념상품) 기획과 판매는 억지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디어일 뿐이다.

개인의 사연을 노출하기 싫어하는 수혜자의 마음과 안타까운 사연일수록 더 기부하게 되는 후원자의 마음 사이에서 균형잡기는 비영리단체 직원들의 몫이다. 가슴 뛰는 직장의 이 모든 일들은 여느 직장의 이벤트사업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의료봉사를 갔다가 현지에서 지진으로 목숨을 잃는 일을 겪었다. 언제나 엄마처럼 살고 싶은 책임감이 따라다녔다. 국제봉사단으로 미얀마에 파견돼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귀국해 아이와 여성을 대변하는 지금의 비영리단체에 취직했다. 가정폭력으로 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도망 나온 22살 선아씨를 8평짜리 원룸에 들여보내고 느낀 벅찬 가슴은 이 직업을 운명으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현실과 보람의 차이는 꽤 컸다.

하필이면 그때 만난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겠다는 사명감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심지어 아빠의 병원 건물마저 예비 사위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자연스레 남자친구 어머니와 거리두기에 들어갔고, 이를 섭섭하게 여긴 어머니의 투정에 남자친구는 자기 엄마 편을 드는 문자를 보냈다. 바로 그때 사무실에 걸려온 무례한 후원자의 전화 한통은 퇴사와 이별을 결심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밀었다.

어느 때보다 힘든 청춘들을 위로할 말이 없다. 뭘 좀 해보려고 하면 번번이 장벽에 부딪히고, 사회적으로 터지는 크고 작은 참사들은 청춘의 가슴을 멍들게 만든다. 그 나름대로 보람을 찾아 의미 있는 직업을 찾으려고 하지만 현실은 보람보다는 좌절을 안기기 일쑤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성세대는 제대로 된 삶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사과한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춘들에게 적어도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 한다. 가슴 뛰는 일을 찾는 청춘들이 그나마 어른들을 대신해서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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