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월, 그날도 마을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둘레길 옆으론 논과 밭이 이어져 있는데 농부들이 오가는 논밭둑엔 민들레가 무리 져 피어 있었다. 군락을 이뤄 피어난 샛노란 민들레 꽃밭, 태양의 눈부신 입자들이 떨어져 번진 듯한 채색의 꽃밭을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오곤 한다. 그래서 민들레 군락 옆에 앉아서 한가로이 꽃들을 바라보며 쉼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민들레잎을 조금 뜯어 와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민들레 샐러드는 봄여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생초 요리.
민들레꽃들이 만개한 어느 날, 다시 둘레길을 걷다보니 민들레를 포함한 논둑의 풀들이 누렇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제초제를 뿌린 듯싶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니 이럴 수가! 시들시들 죽어가는 잎사귀들 위로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씨앗들이 솟아 있었다. 제초제를 치지 않은 다른 논둑을 보니, 꽃만 피어 있을 뿐 아직 씨앗들은 맺히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제초제를 맞고 죽음을 예감한 민들레들이 서둘러 씨앗들을, 신생의 꿈들을 밀어 올린 것이었다. 그 순간 경이감에 사로잡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피어난 민들레 갓털(冠毛)들. 그래, 이건 기적이야! 시골에 귀촌한 후 15년 이상을 살았지만, 이런 강렬한 느낌은 처음. 땅에 엎디어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히기도 하는 작은 생명이 제 몸으로 빚어낸 신생의 기적! 그 놀라운 기적을 목도하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주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왜소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런 놀람의 충격은 내가 살아온 생의 낡은 매듭을 짓게 하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각성의 계기가 된다. 민들레가 보여준 기적을 마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내가 좋아하는 유대교 철학자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말이 떠올랐다.
“세계는 정신의 광휘로 가득 차 있다. 장엄하고 신기한 비밀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작은 손바닥이 하늘을 가려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헤셀의 슬기로운 말들>)
여기서 말하는 작은 손바닥은 소위 속도와 편리·효율이라는 첨단문명 이기에 사로잡힌 우리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런 삶의 방식에 길들면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서 점차 멀어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놀람과 경이감이 없으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슬기와 지혜도 싹트지 않는다.
공자도 <시경>에서 말했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공경하라고.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든 존재는 공경받아야 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그렇다. 하다못해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조차 공경받아야만 할 가치가 있다.
최근 태풍이 오기 전 우리집 마당에는 개미들 행렬이 다른 때와 달리 분주했다. 나보다 관찰력이 뛰어난 아내는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걸 보니 큰비가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곧 물이 잘 나가도록 하수구를 치고 태풍에 날아가거나 젖을 만한 가재도구는 미리미리 치워 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퍼뜩 드는 생각. 대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은 헛된 자만심을 버리고 풀 한포기, 개미 한마리조차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우러러보는 능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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