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대지의 미소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해뜰녘에 산책을 나섰는데 야산 밑 농가 울타리 아래에서 미소 짓는 꽃들을 만났다. 분홍과 노란빛의 낮달맞이 꽃들. 이 꽃들은 밤에 피는 달맞이꽃처럼 수줍은 미소가 아니라 아이처럼 깔깔대고 웃고 있었다. 어떤 미소든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다. 명랑의 기운을 전해준다. ‘쉴 새 없이 명랑하자!’는 우리 집 가훈은 사실 대지의 미소인 꽃들의 영향으로 지어진 것이다.
꽃이나 새들, 나무들 같은 대자연의 동무들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물론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내 영적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관련된 이야기는 그것을 잘 드러내준다.
어느 날 프란체스코에게 젊은이 세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동굴을 하나씩 차지한 후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신만 추구할 작정이라며 축복을 빌어달라고 청했다. 프란체스코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진정한 은둔자의 길을 가르쳐줬다. 먼저 그는 세 젊은이를 한 오두막집에 함께 살게 했다. 한 젊은이에게는 아버지 역할을, 또 한 젊은이에게는 어머니 역할을, 마지막 젊은이에게는 자식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 역할은 몇달에 한번씩 바꾸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 젊은이는 손발이 척척 맞는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됐다.
이제 그들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젊은이들은 인간관계야말로 우리 내부에 있는 거친 모서리를 모나지 않게 갈아주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성의 핵심을 찾아내는 가장 완벽한 도구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인도 출신의 수도자인 에크낫 이스워런의 책 <인생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에서 읽었다. 그가 이야기 끝에 남긴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도 너무 먼 곳을 바라보지 말자.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 이웃, 심지어 적을 바라보면서도 얼마든지 그들처럼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생의 길을 걷다가 만난 풀꽃이나 새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존재의 성숙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스승을 따로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며칠 전 시인 한분이 아름다운 자기 체험이 깃든 시집을 보내왔다. 시인은 중국 둔황의 비단길을 여행하다 겪은 이야기를 시로 썼다. 그는 여행 중에 마사지 가게에 들어가 한 마사지사에게 발 마사지를 받았다. 그렇게 발 마사지를 받으며 느낀 경험을 시인은 이렇게 묘사했다. “움츠렸던 발이/서서히 웃었다.//말이 안 통해서/내 양쪽 무릎 위 맨살에다//웃는 얼굴을 볼펜으로 그려/보여주었다.//그녀도 얼핏/웃었다.”(백우선, <무릎 위 웃는 얼굴>)
진정한 소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말이 안 통하는 소통 부재의 상황 속에서 자기 맨살에다 ‘웃는 얼굴’을 그려서 마사지사에게 보여주는 적극적인 소통 의지.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세상이지만 우리가 너무 먼 곳을 바라보지 않고 만나는 존재들과 능동적인 마음으로 소통할 의지를 갖는다면 나도 달라지고 세상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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