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타르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온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쏠려 있어도 일상은 예전처럼 돌아간다. 영화도 마찬가지. 매주 극장에서는 신작 영화가 개봉한다. 다만 국제 스포츠 행사가 벌어지는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의 성격은 기대작이 몰리는 극장가의 성수기 때와 다르다. 영화에서 멀어진 관객의 관심을 끌려는 영화 배급 관계자는 맞춤형 개봉 전략을 구사한다. 축구로 치면 수비 쪽에 잔뜩 진을 치고 있다가 역습 한방을 노리는 형국이라고 할까. 인지도가 높지 않으나 탄탄한 작품성과 오락성으로 관객을 모으는 데 집중한다.
<올빼미>는 반정으로 조선의 제16대 왕위에 오른 인조(유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침술사 경수(류준열)는 특출한 의술로 어의의 눈에 들어 궁에 입성한다. 기쁨도 잠시,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김성철)의 죽음에 연루되면서 경수는 죽느냐, 사느냐, 긴박한 상황에 몰린다. 이 영화는 중량감 있는 두 배우 류준열·유해진의 등장에도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데다 맹인이 살인 사건 목격자라는 설정 또한 기시감이 있어 차별점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신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안태진 감독은 극 중 경수가 직면한 한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몰입도를 높였다. 앞을 못 보기는 해도 빛이 사라진 밤에는 흐릿하게나마 시야를 확보하는 경수의 ‘주맹증’ 설정은 상황을 좀더 입체적으로 꾸민다. 극한 상황을 유도해 관객이 쉽게 예측할 수 없도록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맹인이 어떻게 앞을 보느냐며 경수의 진술을 믿지 않는다. 그 때문에 살인자로 몰려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경수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알리려 사투를 벌인다. 보지 못하지만, 못 보지도 않고, 보긴 해도 정확히 판별할 수 없는 경수의 한계 조건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사를 한층 탄탄하게 한다.
안 감독은 <달마야, 서울 가자(2004년)> 스태프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년)> 조감독으로 활약하며 사극 문법을 익혔다. 그에게 <올빼미>는 무려 18년 만의 첫 연출 작품이다. ‘주맹증이 있는 주인공이 궁에 들어가 비밀을 목격한다’는 설정을 제안받고 4년간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영화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 일주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극장에 끌어들이며 월드컵이라는 악조건(?)을 극복해냈다. 월드컵은 전통 강호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릴 확률이 높지만 의외로 관심 밖에 있는 팀이 선전해 대회 흥행을 주도할 때도 있다. <올빼미>는 후자의 사례처럼 ‘언더도그’의 반란으로 극장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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