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땅과 물, 빛과 쌀을 담은 카페

입력 : 2022-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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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답은 당연히 ‘쌀’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빵·피자·치킨처럼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고 한다. 예로부터 넓은 논을 소유해 쌀농사를 지어 곡식을 많이 쌓아두는 것이 권력이었고, 이를 이웃과 나누는 것이 미덕이었다. 불과 백여년 전까지만 해도 봄이 되면 풍년을 기원했고, 작황에 따라 다음해 삶이 달라졌을 정도로 우리는 농업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짧은 기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김범관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가 설계한 경남 양산시 주진동의 한 논 가운데 자리 잡은 ‘스페이스 아리주진(사진)’은 지역의 옛 이름과 현재 이름을 빌려온 것이기도 하지만 ‘아리’라는 단어는 ‘쌀알’을 연상하게 한다. 먼저 간판이나 안내판이 쌀알 모양으로 제작돼 있으며, 외벽에는 쌀알을 닮은 2780개 알루미늄 패널이 부착돼 있다. 입체적으로 배열된 패널은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조금씩 다른 색을 보여주기도 하고 얇은 수면에 건물 전면이 반사되면서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쌀알을 상징하는 것은 외벽에만 그치지 않는다. 내부에 들어서면 의자와 탁자 그리고 액자에 담긴 그림들까지 쌀알을 생각나게 하는 형태로 제작됐다. 바닥은 노란색 모자이크 타일로, 화장실은 흰색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한 것은 껍질을 가진 쌀알과 도정한 새하얀 쌀알을 표현한 것 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한다.

이곳 목구조는 건축사의 눈으로 보아도 이색적이다. 질서정연한 피라미드처럼 정확한 대칭구성으로 균형을 이룬다. 창과 대면하는 부분은 계단 폭과 동일하게 위와 아래층이 뚫려 있으며, 건물 한가운데 4개 기둥 사이로 작게 뚫린 공간은 세상의 중심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다. 우리 옛 선조가 빼어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자 조성한 정자처럼 주변 풍경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유려한 건축물은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건물 측면에는 스테인리스 재질로 된 지붕을 매우 얇은 기둥들이 지지하는 형태의 파빌리온이 세워졌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 앉아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파빌리온과 목조건물에서 바닥이 비워진 부분은 건축법상 면적 기준과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을 절충하고자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제약이 오히려 탁월하게 공간을 구성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국에 특색 있는 카페가 꽤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스페이스 아리주진은 쌀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들러 쌀알 의자에 앉아 논을 바라보고 싶다. 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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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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