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재미의 발견, 빈센트 발

입력 : 2022-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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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발의 그림 ‘경찰을 피해 몸을 숙여라’. 이미지 제공=㈜디커뮤니케이션

그림자는 이미지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고대 로마의 대(大)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 초상화의 탄생과 연관 있는 그림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스에 사는 어느 도공의 딸이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남자가 외국으로 떠나야만 하는 날이 다가오고 둘은 헤어져야 할 운명에 처했다. 그를 영영 잊게 될까 두려웠던 딸은 불빛에 비친 그의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벽에 그림을 그렸다.

벨기에의 영화감독 빈센트 발(Vincent Bal, 1971년생)은 그림자의 가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는 유리컵이든 병따개이든 주변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조명을 비추어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에서 뭔가 흥미로운 것이 연상되면 그 위에 약간의 펜 작업을 추가한 다음, 사진으로 찍고 재기발랄한 제목을 단다. 평범했던 사물은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바뀌어 새 생명을 얻는다.

‘예술가의 발견’이라고 하면 그저 가볍게 행운처럼 얻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력 없이 기발한 이미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2015년에 처음으로 찻잔에서 코끼리의 그림자를 우연히 찾아낸 후, 약 7년간 발은 ‘발견’을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 틈만 나면 빛을 쪼였다. 그림자를 제공할 만한 잡다한 물건들을 사들이다 보니, 집 안이 만물상이 되기도 했다. 투명한 물결처럼 미묘한 뉘앙스를 내는 그림자 효과를 내려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유리컵을 수집했는데 어느덧 주변 공간이 발 디딜 틈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림자가 창의적인 작품으로 변신하려면 두 가지의 탁월한 재능이 필요하다. 첫째, 일상적인 장면에서 다른 차원의 형상을 알아보는 초현실적인 눈이다. 이를테면 익숙한 모습으로부터 낯선 면모를 끄집어내는 것인데, 발의 작품에서 장난감 오리가 난데없이 도둑으로 변하는 것은 좋은 예다. 둘째, 아직 명확한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이미지에 감각적인 제목을 달아주는 능력이다. 발은 동음이의어를 조합한 언어유희를 즐긴다. 가령 <경찰을 피해 몸을 숙여라>의 영어 원제는 다. 여기서 오리를 뜻하는 ‘덕(Duck)’에는 ‘몸을 숙이다’라는 뜻도 있다. 마치 오리가 도둑이 될 것을 예견하는 듯한 제목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발은 일상에 재미를 선물한다. 재미가 담긴 이미지는 재치 넘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활력을 준다. 온종일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어 있을 때, 발의 작품을 보면 한두 번쯤 미소를 띠게 될 것이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던 발의 즐겁고 건강한 이미지들이 이번에 한국 관객을 맞이한다. 전시회는 ‘뮤지엄209’에서 내년 4월2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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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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