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물가관리의 공정과 상식

입력 : 2022-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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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하순 즈음이다. 당시 MB정부의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물가관리를 맡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넋이 나갈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산지 작황 악화로 추석 직후 배추 한포기가 1만원을 넘어서자 들끓는 비난 여론에 직면한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머리기사 헤드라인으로 굵직하게 ‘金배추’를 내걸고 정부에 집중포화를 쏟아부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책 이슈에 목말라 있던 국회 역시 절호의 찬스를 맞아 책임자 닦달에 하루해가 짧을 지경이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허겁지겁 중국산 배추를 들여오기에 이르렀다. 관세도 없애 기어코 배추값을 잡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수입업자들은 때아닌 호재를 만나 정부의 엄호 아래 낯선 미국 배추까지 수입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수입은 시장 교란만 불러온다’는 농민들 우려는 ‘물가안정’ 명분에 파묻혀버렸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온 나라가 결딴 날 것처럼 떠들썩했던 배추 파동은 어이없게도 수입배추가 아닌 국내 배추 생산이 회복되면서 수그러들었다. 그사이 정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수입배추는 슬며시 종적을 감췄다. 억울하게 된 건 농민들이었다. 뒷일 생각 않고 공급 확대 일변도로 몰아간 수급정책 탓에 이듬해 5월 봄배추값 폭락 사태가 났고 애꿎은 농민들은 씁쓸히 폐기처분에 나서야 했다.

어설픈 물가대책이 민생안정이란 미명으로 포장돼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하는 문제는 그 뒤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고추·마늘·양파·대파…. 품목을 일일이 대기 힘들 정도다. 그때마다 언론은 ‘밥상물가’를 걱정했고 정부는 ‘물가안정’을 내세워 거침없이 수입 카드를 휘둘렀다. 지난해는 수입 흑역사에 미국산 달걀이 또 한획을 그었다. 정부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달걀값이 계속 오르자 다시 수입에 올인했다. 농민들은 국내 생산기반 회복이 우선이라고 만류했지만 수입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듯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정부가 주도해 미국산 달걀을 무관세로 3억8000만개나 들여왔지만 수급불안은 계속됐고 가격이 안정된 건 이번에도 국내 생산기반이 회복된 뒤였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고 나중엔 처치 곤란해진 수입란 폐기비용까지 국민 혈세로 메웠다. 이쯤 되면 달리 생각할 만도 한데 여전히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방향 선회는커녕 초인플레이션에 작심한 듯 가속페달을 밟아대고 있다. 물가 잡는다며 긴급할당관세와 저율관세할당(TRQ)을 총동원해 농축산물 수입을 마구 늘려가고 있다. 어느 것도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엿보인다.

그런데 너무 나갔다. 사태 파악부터 잘못됐다. 정부는 이번에도 물가안정을 명분 삼고 있지만 물가상승을 주도한 건 석유류를 중심으로 한 공업제품과 서비스 품목이다. 산지 쌀값은 폭락해서 난리인데 <햇반>가격은 7% 오른 게 단적인 예다. 업체는 액화천연가스(LNG)와 포장재값 상승을 이유로 댔다.

치킨값의 25%를 차지하는 배달료는 또 어떤가. 이런데도 뭉뚱그려진 ‘밥상물가’ 타령에 우리 밥상은 점점 더 글로벌하게 차려지고 있다. 농민들만 속이 탄다. 유류·농자재·인건비 폭등에다 가뭄·폭염 피해로 생산량은 쪼그라들어 농산물값이 올라도 오른 게 아닌데 왜 아니겠나. 지금 잡아야 할 건 농축산물이 아닌 석유값이고 외국에서 더 들여야 할 건 농축산물이 아니라 근로자다. 이게 ‘공정과 상식’이다.

이경석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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