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아 촌락에 계신 어른들께 문안을 여쭙고자 고향 마을을 찾았다. 풍년을 예감하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함께 청아한 계곡 물소리, 쑥향 들판과 농로의 하늘과 맞닿은 이팝나무 풍경이 잠시 시름을 놓게 했다. 논물 잡기 위해 삽 든 마을이장 형님과 마주친 건 마을 어귀에서다. 농부병을 앓던 고령어르신들이 코로나19로 유명을 달리해 이젠 10여가구만이 마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이즈음 들녘은 울력하며 부르는 노동요 가락과 새참 준비로 분주한 아낙네, 이앙을 준비하는 촌부의 잽싼 모판 손길로 무척 생기가 넘쳐났었다.
지금이야 기계가 대신하지만 1970년대는 가족 중심 농사였다. 써레질한 논의 줄잡이는 한줄 모심기가 끝나면 한칸 뒤로 줄을 이동하기 위해 ‘주∼울’을 외쳐댔고 모잡이들은 5∼6포기 되는 모를 잽싸게 심어야 했다. 좀 늦노라면 손·줄이 뒤엉켰고 튄 진흙 때문에 곰보딱지 얼굴이 됐다. 놉·품앗이꾼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바탕 폭소로 시름을 날리기도 했다. 걸쭉한 전통주와 토란국·마늘종 등 금방 내온 절기 음식은 어찌나 맛나든지 시장기에 일그러진 김씨의 눈살 펴주기에도 넉넉했다. 동고동락하며 고충을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공동체의 사회교육 마당이 되기도 했다.
복달임을 위한 천렵은 또 어떤가. 동기간 정 나눔과 마을 화합을 위한 강가 피라미 잡기와 흐르는 물속 탁족은 더위를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어죽과 지천인 식재료가 들어간 소박한 한상은 가히 ‘전통음식’이라 자부할 만했다. 제왕 반상 부럽지 않은 ‘자연 행복’이 입안 가득했고 가난하지만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었다. 고양이 손도 필요하다는 바쁜 수확철에도 함께했다. 저마다 ‘ㄱ’자 모양의 시우쇠와 슴베 나무 자루 박은 ‘낫’을 가지고 와 황금빛 일렁이는 나락 베기에 동참했고, 탐스러운 사과·배는 물론 튼실한 감자·고구마를 수확하는 데 일손을 보탰다.
한가위와 설은 농촌을 대표하는 세시풍속이다. 가을걷이한 햅쌀로 떡을 만들었고 고운 한복 입고 어르신을 찾아 절을 했다. 마을 최연장자인 김 노인 막내딸 ‘순이’가 시집가는 날은 한바탕 잔칫날이었고 인륜지대사였다. 잔칫상 준비하고 멍석도 내주며 혼례를 준비했던 것은 마을이다. 남을 배려하는 의식이 있었고 관혼상제를 지켜가는 현장이었다.
술래잡기·딱지치기·공기놀이·제기차기와 같은 놀이가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애플TV+ 등에 방영되며 K-문화를 대표하는 이야기 소재가 됐다. 모두 농촌을 기반으로 한 전통놀이다. 한국관광공사 최근 발표에 따르면 K-팝 대표 ‘방탄소년단(BTS)’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파친코> 등 K-콘텐츠가 각종 상을 휩쓸며 전세계인에게 호평을 받았다. 어릴 적 했던 놀이가 K-문화로 승화돼 세계인의 이목을 끈 셈이다.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일 수 있단 얘기다. 농촌 생활·체험·놀이 등은 토착민의 혼이 녹아 있는 소위 ‘돈’ 되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마을 전문가의 충고가 그래서 더 귀하게 들린다.
K-문화의 바탕인 농촌문화를 이어가는 것과 평상시 실천이 중요하다. 최근 문화재청이 ‘한복 입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생활 복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것은 좋은 사례다. 전통 속에 담긴 얼을 상고하고 스토리텔링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코로나19 노마스크 시대 지역행사에 적극 참여해 신명 나게 놀아보자. 농촌문화가 꽃피었을 때 K-문화의 저력도 돋보인다.
황의성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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