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독도 강치와 관세 자주권

입력 : 202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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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4월의 일이다. 대한제국의 내부(지금의 행정안전부)가 문서 하나를 만든 뒤 윤용선 내각총리대신 결재를 받아 울도(지금의 울릉도)군수에게 보냈다.

10개 조항으로 구성된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울릉도와 석도(지금의 독도)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미역을 채취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거두고 출입하는 화물은 물건값에 따라 세를 거둬 경비에 보태라.’ 이 문서는 ‘울도군 절목’으로 울도군 초대 군수인 배계주의 후손이 2010년 세상에 공개했다.

역사학자들, 특히 독도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즉각 연구에 나섰다. 연구 결과 적시된 ‘출입하는 화물’은 강치(바다사자의 일종으로 독도에서만 잡힘)·전복·우뭇가사리·해삼·오징어 등을 포함했고, 세금 납부자는 일본인이었다.

한 연구자는 인터뷰에서 “일본인이 독도에서 잡은 강치를 팔기 위해 울도군 절목에 따라 세금을 납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그들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지금의 ‘관세’를 납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무주지 선점론’이다. 주인 없는 땅을 자신들이 먼저 차지했다는 거다. 정부가 당시 울릉도와 독도에 ‘관세’를 부과했다는 사실은 일본의 무주지 선점론을 허무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1878년의 일이다. 정부는 부산항에 암행어사 이만직을 내려보내 상황을 살피게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인 ‘두모진 해관’을 지금의 부산시 동구 수정동 자리에 설치했다. 일본 상인들이 판매하는 물품에 관세를 물리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일본 상인 200여명이 난입해 소란을 피우고 항의했다. 결국 두모진 해관은 3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오늘날 관세청 세관 공무원들은 왼쪽 가슴에 방패 모양의 흉장을 달고 다닌다. 방패는 자신들이 관세 국경을 방어하는 파수꾼임을 상징한다. 그런데 흉장의 밑부분에는 ‘1878’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두모진 해관 사건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관세 자주권을 꼭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최근 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들의 불법적인 저가신고, 이로 인한 관세탈루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관세청이 뒷북치듯 관세 추징에 나서고 있다지만 지난해말 기준 체납액이 무려 7800억원에 달했다.

외국산 농산물의 저가신고와 관세탈루는 두가지 관점에서 심각하다. 첫째는 국고 손실이다. 관세청의 허술한 행정 탓에 응당 받아야 할 관세를 받지 못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해친다. 둘째는 국내 농업계 피해다. 관세 국경을 허문 수입 농산물이 국내시장을 잠식하면서 국산 농산물의 설 자리를 뺏고 있다. 지난해 건조생강에 이어 올해 새롭게 불거진 중국산 건조양파의 불법 저가신고 사례가 딱 그렇다. 지금 우리 양파농가들은 폭락한 양파값 때문에 밭을 갈아엎고 있다.

“농산물은 단순히 수출입되는 물품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먹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준이 엄격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어느 수준 이상의 관세율을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기자가 비슷한 얘기를 관세청에 당부하고 싶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관세청이 자체 블로그에 스스로 올려놓은 글이기 때문이다. 대신 국민 한사람으로서 당부하고자 한다. 오늘, 왼쪽 가슴의 흉장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시라.

한재희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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