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농정공약과 협치

입력 : 2022-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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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결성된 스웨덴 출신 혼성그룹 아바(ABBA)는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뮤지컬과 영화 <맘마미아>를 통해 최근에도 인기를 끈 ‘The Winner Takes It All’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곡을 듣다보면 경쾌한 멜로디와 달리 썩 유쾌하진 않다. 가슴 아픈 이별의 내용을 담은 데다, 제목 또한 ‘승자독식’ 아닌가. 대한민국 선거판, 특히 대통령 선거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대선에 승리한 후보는 대통령이 되고, 승리한 세력은 집권여당이 된다. 당락이 확정되는 순간, 전 국민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패자의 공약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운다.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은 임기 동안 대선 공약에 기초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선거에서 진 세력은 여당과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집권기회를 노린다. 승자의 공약 이행을 놓고 여야가 5년간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역대 대선에서 제시된 공약은 후보들의 철학과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번 대선에서 ‘농업예산 확대’가 이슈로 떠오른 것은 ‘농업 소외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농업예산 비중은 최근 15년간 절반으로 떨어졌다. 주요 후보들이 이 부분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후보 이름을 뺀 채 농정공약만 보면 누구의 공약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만큼 농업·농촌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결책은 다르지 않고, 이는 농업분야만큼은 ‘협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현재 2조4000억원 규모인 공익직불제 예산을 5조원까지 늘리겠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과 똑같다.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 비중을 5%로 확대하고, 공익직불제를 확대하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과도 일맥상통한다. ‘실경작자 직불금 사각지대 해소’와 ‘은퇴직불금 도입’ 공약은 윤 당선인과 이 후보 모두 약속한 내용이다. 특히 ‘농업인안전재해보험을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세 후보의 멘트 하나하나가 같을 정도다. ‘안심하고 농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현장 요구를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공통 공약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낙선 후보들의 공약 중에서도 눈여겨볼 부분은 적지 않다. 이 후보의 공약 가운데에선 농업인력 해소법이 눈에 띈다. 그는 농촌 일손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농업인력지원법’을 제정하고 농촌인력중개센터 확대와 공공형 계절근로자제 도입을 제안했다. ‘일손부족’이라는 큰 장벽에 맞닥뜨린 농가들을 위해 새 정부가 고려해볼 만하다. 비록 3위에 그쳤지만 심 후보의 농정공약은 버릴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농업·농촌 현실이 잘 녹아 있다. 지역주민 주도의 재생에너지 생산·소비 대책, 생산비에 기반한 최저가격 보장, 마을순회진료체계 구축은 현장에서 바라는 정책이다.

직불제 확대, 은퇴직불금 도입, 재해보험 강화 같은 공약은 많은 예산을 수반한다. 예산부처란 큰 산을 넘으려면 당선인의 강력한 추진력은 물론 민주당이 다수당인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대선 직후엔 으레 ‘환호작약(歡呼雀躍·기뻐서 소리치며 날뜀)’과 ‘망연자실(茫然自失·멍하니 정신을 잃음)’로 국민감정이 나뉘기 마련이다. 선거의 패자가 주장했던 의제들이 승자에 의해 수렴될 여지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야 한다. 이번 대선은 막판까지 네거티브 공세로 점철되고 1·2위 표 차이가 0.73%포인트에 불과하면서 협치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윤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려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에게도 많은 공감과 승복을 얻어내 전 국민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세력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조만간 출범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할 일이다.

김상영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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