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를 봤다. 2007년 극장에서 개봉했으니 꽤 오래된 영화다. 그 무렵에 영화를 한번 보긴 봤었다. 그때 든 생각은 ‘잘 만든 좀비영화구나’였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 좀비로 변해 인간을 공격하고, 주인공은 그 좀비들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워 나가는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암 치료 목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바이러스가 나온 뒤 3년이 흐른 때다. 인류는 거의 멸망했고 살아남은 것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뿐이다. 미국 뉴욕에서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육군 중령은 낮에는 빈집을 돌아다니며 식량을 구하고, 집 지하실에 설치한 연구실에서 백신 개발을 하며 생존해가고 있다. 함정을 만들어 좀비를 잡아온 이유도 백신 실험 때문이다. 네빌에게 잡힌 좀비를 구하려 좀비들은 네빌의 집까지 몰려들고, 지하실까지 쫓긴 네빌은 결국 실험 좀비에게서 뽑은 혈액을 안나(앨리스 브라가)에게 쥐어주며 탈출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자신은 쳐들어온 좀비들과 함께 자폭하면서 전설로 남는다는 이야기다.
두번째 보고 나자 영화는 다르게 다가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친 요즘 현실이 영화와 겹쳐졌기 때문이다. 무서운 감염력을 감안한다면 영화의 바이러스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차이는 오십보백보에 불과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좀비라고 여겨졌다. 그런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는 또 얼마나 심각한가. 영화에서는 ‘인류 멸망’이라고 극단적으로 설정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도 현실에서 고통스럽기는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 농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인력난이 농민들을 옥죄는 형국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입국이 막히면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이 한둘이 아닌 실정이다.
결국 인력난으로 짓던 농사 일부를 갈아엎거나 재배규모를 줄이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민들은 인력난이 불러온 인건비 상승 부담까지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차라리 농사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라는 농민의 하소연이 전혀 과장이 아닌 게 코로나19가 초래한 현실이자 견디기 힘든 피해다.
학교급식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민들의 피해 역시 그렇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마다 원격수업으로 대체되면서 급식에 쓰일 농산물 납품이 막혀 판로를 잃어서다. 납품계획에 따라 영농계획을 세우고 농사를 짓던 농민들에겐 ‘날벼락’인 셈이다. 그나마 새학기 들어 납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요즘 언제 학교가 다시 문을 닫을지 몰라 농민들은 지금도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영화는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안나에게 건네진, 백신을 만들 수 있는 혈액이 그것이다. 그 희망을 위해 주인공이 희생한 것 아닌가.
본지 기획 <가족농 열전 백년농부>에 이런 구절이 실린 적이 있다. 대를 이은 청년농업인이 태풍이 쓸고 가 쑥대밭이 됐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인삼농사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존경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청년농 역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겠노라” 다짐했다는 대목이다.
그런 의지라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처럼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힘을 합쳐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전설이다”가 아니라 “우리는 전설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주인공처럼 죽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내고 이겨내서 말이다. 마스크를 벗는 내일, 반드시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강영식 (취재부국장)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 게시판 관리기준?
-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 농민신문
- 페이스북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