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파격적 당근’ 필요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입력 : 2022-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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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협력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협력하는 인간 능력은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갈등, 즉 전쟁을 통해 발전했다.”

이는 피터 터친 옥스퍼드대학교 연구교수가 <초협력사회>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흥미로운 내용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협력이 평화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진화했다는 그의 냉철한 분석이 놀랍다. 집단의 생존이 좌우될 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협력을 잘 이뤄낼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책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하 상생기금)이었다. 세계 무역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중간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초협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상생기금은 2015년 11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앞두고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여·야·정 합의로 도입됐다. 입법 과정을 거쳐 2017년 3월 상생기금이 첫발을 뗐다. FTA 체결로 이익을 보는 기업으로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모으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하지만 과거 5년간 상생기금 모금 결과를 보면 씁쓸하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2017∼2021년 상생기금 출연 누적금액은 1605억원에 불과하다. 연간 평균 출연 상생기금이 321억원에 그친 셈이다. 목표 달성률은 32.1%로 낙제 수준이다. 정부가 나름대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렇다면 남은 5년 동안에 상생기금 조성 목표를 달성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려면 어떻게 혁신해야 할까?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상생기금에 참여하는 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기업은 대의명분에 설득되기보다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기업 출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크게 늘려야 한다.

특히 동반성장지수 가점을 현행보다 높이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동반성장지수란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민간 자율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에서 기업별로 동반성장 수준을 평가한 뒤 산정·공표하는 지표를 말한다. 기업 입장에서 동반성장지수 점수가 높으면 공정거래위원회 직권조사가 면제되고 평판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이 출범 10여년 만에 누적기준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는 사실이다. 동반성장지수를 평가할 때 가점을 상대적으로 후하게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극화 해소방안으로 상생기금에 대해 언급하며 “참여하는 기업에 국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정부가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기업을 대상으로 농어촌상생협력지수를 측정·공표하고 ‘농어촌상생협력 대상’이라는 시상제도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현재 농어촌상생협력은 기업인들 사이에선 생소한 개념이라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인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연계해 농어촌상생협력에 적극 나서도록 지표를 만들고 상을 줘 격려하면 큰 자극제가 될 것이다.

우리 농업·농촌은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높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과 같은 메가(초대형) FTA까지 국내에서 최근 발효되며 우리농산물의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서다. 상생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5년 남았다. 상생기금 혁신을 위해 정부·국회·기업이 협력의 끈을 바짝 더 조여야 할 때다. 그래야 고사 위기에 내몰린 우리 농업·농촌을 살리고, 기업인을 존경하는 풍토가 생기지 않을까.

임현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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