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술자리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꽤나 지루한 주제가 군대 이야기다. 군대 갔다온 당사자만 신나는 게 대부분이다. 군필자라면 맞장구라도 치겠으나, 나머지 사람들에겐 하품 나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까지 나오면 동석한 여성들의 표정에 괴로움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그런데 요즘 뜻하지 않게 군대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군 부실급식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군생활을 돌이켜보면 군급식, 이른바 짬밥에 대한 추억이 많다. 2년 넘게 하루 세끼를 군대에서 먹었으니 오죽하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은 맛이 없으나 건강한 식단이었다는 점이다. 밥은 간간이 떡처럼 엉겨붙어 있었고 멀건 된장국이 단골 메뉴였다. 그래도 식재료가 신선해서인지 군대 가기 전 애먹이던 각종 ‘속병’이 싹 사라졌던 경험이 있다.
또다른 추억은 부대별 짬밥의 수준 차이다. 사단사령부에서 근무하며 여러 예하부대의 짬밥을 먹어보니 “같은 식재료인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일부 군 간부들이 식재료를 떼먹느냐 아니냐에 따라, 조리병의 요리 솜씨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짬밥의 수준차가 벌어진다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
이미 30년 넘은 옛일이 됐지만, 최근 부실 군급식 논란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게 없어 보인다.
군 부실급식 논란도 메뉴에 있는 요리나 반찬이 군인들에게 제대로 배급되지 못한 게 발단이 됐다. 엉터리 식재료 수급 관리와 배식 실패가 사태의 본질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애먼 식자재 계약방식에 화살을 돌렸다. 50여년간 유지된 농·축·수협과의 수의계약으로 인해 부실급식 사태가 불거졌다는 논리다. 전형적인 ‘책임 전가’다. ‘작전에 실패하면 용서가 돼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가 안된다’는 우스갯말이 있는데, 배식에 실패한 군이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만든 형국이다.
국방부는 14일 군급식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농·축·수협과의 수의계약 물량을 내년부터 3년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5년부터 식재료를 전량 경쟁체계로 조달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가공식품에 쌀 함유 의무 규정과 흰우유 의무 보급 규정도 폐지했다. 장병들의 건강보다는 입맛대로 급식을 제공해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다.
농축수산물의 ‘국내산 원칙’과 ‘지역산 우선 구매’ 규정만이 이번 대책에 간신히 포함됐다. 이마저도 경쟁입찰 시범사업 부대에서 수입 농축산물과 대기업 제품을 대거 요구한 데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여론에 떠밀려 넣은 규정이다.
이번 대책으로 당장 내년부터 농·축·수협과의 수의계약 물량이 줄어 군납농가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접경지역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나 다름없다. 수십년간 군부대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농축산물을 군납한 것인데,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한다는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이들이 집단시위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국방과 농업은 전통적으로 국가안보의 양대 축이다. 국방은 나라를 지키고 농업은 식량안보를 책임진다. 농·축·수협과의 수의계약 대신 경쟁체계를 전면 도입하면 위급시에 식량 비축·조달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안보의 한축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런 논리라면 ‘군인도 외국에서 수입하자’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군인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때 제공하는 건 국가의 의무다. 경쟁조달 시스템이 되면 값싼 가공제품이나 수입제품 위주로 식단이 짜여 군인들의 건강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계획생산체계에 기반한 수의계약을 유지하며 군인들의 만족도를 높일 방안을 찾는 게 합리적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요즘 군인들에게 훗날 짬밥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묘수를 고민해야 한다.
남우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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