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현재 시각은 ‘개판 오분 전’

입력 : 202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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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사람의 후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이런 난센스 퀴즈를 냈다. 출연자가 머뭇거리자 사회자는 “정답은 바로 개입니다”라며 능청맞게 웃는다. 개를 자식처럼 끔찍이 여기며 키우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는 세태를 풍자한 ‘조크’였다.

우리 주위에선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를 쉽게 볼 수 있다. 반려동물 가구수가 전체의 30%가량 된다는 통계도 나와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에 나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닌, 동물 그 자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생명이 보다 존중받는 사회를 견인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법무부의 이번 조치는 동물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활동 무대를 더욱 넓혀줘 순기능보단 역기능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동물권이란 동물 개체별로 갖는 권익을 뜻한다. 동물복지와는 다른 개념이다. 동물복지는 동물이 학대나 고통 받아서는 안된다는 동물보호 정신과 궤도를 같이하면서도 궁극적으론 사람의 이익을 중시한다. 반면 동물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동물과 사람의 권익이 똑같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사람이 동물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축산업 등은 물론이고 관련업계 종사자까지 혐오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의 권리와 이익은 그만큼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동물권을 주창하는 다수 단체는 지난해 지역축제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강원 화천 산천어축제가 동물(산천어)을 학대하는 행사라며 화천군수와 주관단체를 고발한 바 있다. “닭을 먹지 마라”고 외치며 기업의 치킨 관련 행사장에 난입, 기습시위를 펼친 동물권 주창 단체도 있었다.

올 5월 50대 여성이 떠돌이 개에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이 개의 안락사를 반대하는 민원이 빗발쳤다. 민원의 주인공들은 동물권 주창 단체 관계자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반인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권을 주창하는 사람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똑같이 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중에는 동물권 주창자들의 논리를 부화뇌동하듯 그대로 동조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무턱대고 반려동물 문화를 경계해선 안되겠지만 한편으론 반려동물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애정이 위화감을 조성, 사회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신조어 ‘딩펫족’이 우리 곁에 통용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다. 가뜩이나 인구절벽에 내몰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아이 대신 반려동물을 택하는 것은 사회적 위화감만 키운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한 금융기업이 키우던 반려동물에 재산을 상속할 수 있는 신탁상품을 판매하는 것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다.

민법이 개정돼 지금보다 동물권이 한층 강조된다면 반려동물의 권익 향상을 위한 새로운 제도 도입 요구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가뜩이나 핵가족화와 1인가구 증가 등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텐데, 사람의 권익에 뜻하지 않은 변화가 생길지 걱정이 앞선다. 반려동물의 절대 다수가 개라는 점에 미뤄볼 때 ‘사람의 후손은 개’라는 조크는 아주 무겁게 들린다. 이러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개 세상,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개판’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재 시각이 ‘개판 오분 전’일 수도 있다.

김광동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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