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더위도 잊게 한 청년농의 함박웃음

입력 : 202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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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에 지칠 대로 지쳐가는 중이었다. 한낮에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더웠고 언론마다 2018년 이후 역대 최악 수준의 폭염이라고 보도하기 바빴다. 덩달아 기분도 한없이 가라앉을 즈음 강원 화천에 다녀왔다.

본지는 영농·생활 수기를 공모해 심사를 거쳐 입상작을 결정하면 발표하기 전 수기 내용이 실제와 다른 점은 없는지 확인작업을 한다. 수상자가 다수다보니 여러명이 나눠 현장으로 간다. 그중 청년부문 수상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출장을 간 것이다.

꽈리고추를 재배한다는 청년농은 수확작업으로 한창 바쁠 때라고 했다. 농장에 도착하자 작업하던 청년농이 나왔다. 한여름의 불볕더위는 이른 아침에도 그 위세가 대단했다. 이글거리는 뙤약볕에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작업을 하다 잠시 나왔다는 청년농에게서 힘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함박웃음이었다. 꽈리고추 농사가 잘돼 한껏 신이 나 있었다.

농업에 대한 가치관이 같아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배우자도 함께해 이야기를 나눴다. 생명산업에 대한 소신으로 똘똘 뭉친 청년들에게서는 자신감이 느껴졌고 그 당당함과 환한 웃음이 눈부셔 더위를 잊었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년농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괜히 울컥하고, 괜히 뿌듯했다. 농업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터라 먹먹했고, 그런 것을 알고도 선택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이들이 고맙고 대견했다.

본지는 청년농들의 삶을 응원하고 소개하기 위해 올해 처음 영농·생활 수기 공모에 청년부문을 신설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농촌에서의 삶을 시작한 젊은 영농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도착했다.

농촌에 정착하게 된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젊은이들을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어 했다는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다. 고령화하는 농촌에서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찾아왔으니 오죽 기특했을까 싶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2020년 귀농어·귀촌인 통계’를 보면 가구주가 37세 이하인 귀농가구가 1362가구로, 2019년 1209가구보다 12.7% 증가했다. 귀농어·귀촌인 전체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보다 0.3%포인트 커졌다. 농식품부의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에서 30대 이하가 꼽은 귀농의 이유 중 1위가 ‘농업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이란다. 청년들이 농업에 희망이 있다고 보고 농촌을 향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떠올려보면 그동안 현장에서 청년농을 여럿 만났다. 그중 대기업에 다니다 부모가 사는 곳으로 귀농해 사과농사를 짓던 부부가 있었다. 3년 전에 만났던 이들은 당시 ‘스스로 꿈꾸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농부라는 인생의 두번째 명함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여전히 열심히 농사지으며 활동하고 있다. 갓 걸음마를 뗀 초보농부로 농사짓는 과정을 즐기겠다던 부부의 블로그에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신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삶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려워져 가는 농촌 현장에 젊음을 투자한 청년농들의 꿈과 목표만은 그들의 기대만큼 이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쉽게 가지 않는 길을 가고자 나선 청년농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계속되는 불볕더위로 지친 날에 젊은 영농인들이 보내온 희망의 글은 단비 같은 청량함을 안겨주었다. 수기 심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주의 세명을 주어도 청년농 한 사람과 바꾸지 않겠다’고 하던 심사위원 한분의 후일담도 전한다. 수상작들은 본지 창간특집호부터 소개되니 눈여겨봐 주시기를.

이인아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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