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그래도 뭉쳐야 하는 이유

입력 : 202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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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공조·협력·협동….

기관·단체들이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발표자료에서 자주 언급하는 용어다. 이런 용어들은 다른 기관·단체와 손을 잡아서라도 계획했던 일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낼 때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기관·단체간 협력과 공조가 얼마나 힘든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업무 연관성을 감안하면 상시 협업할 수밖에 없는 조직들이 굳이 협업을 강조하는 건 평소 공조가 원활치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농업부문에서도 공조가 삐걱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농산물 밀수가 극성을 부렸던 2005년의 일이다. 당시 커튼치기·알박기·저가신고 등 온갖 밀수 수법이 기승을 부렸다. 여론에 떠밀린 관세청이 불법 수입 농산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가정보원이 농산물 밀수 근절방안을 별도 모색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관세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공조가 시원치 않았다. 농산물이 수입되면 세관과 검역본부가 각각 검사하는데, 검역본부가 불법이 의심된다고 세관에 알려주면 세관이 ‘월권’이라며 해당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식이었다.

최근엔 검역본부가 인천공항에 설치한 농축산물 검역 전용 엑스레이에 대해 세관이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이 들린다. 이유는 10여년 전과 비슷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느낌이다.

과수 화상병에 대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미흡한 공조도 요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화상병 컨트롤타워인 농촌진흥청은 연구기관이라 그런지 지자체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상당수 지자체는 화상병 방제를 과외 업무로 취급한다.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은 “농진청 할 일을 대신한다”며 지자체 역할을 망각한 무책임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와 환경부는 가축전염병 예방과 축산환경을 둘러싸고 협업보다는 주기적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특히 야생멧돼지에 대한 입장차가 뚜렷하다. 농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 저지를 위해 매개체인 야생멧돼지 개체수 저감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환경부는 개체수 저감에 아주 미온적이다. 그보다는 울타리에 의존해, ASF 확산을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다.

농식품부와 생산자단체의 관계도 예전만 못한 듯 보인다. 끈끈한 협업보다는 제 갈 길이 우선인 모습이다. 친환경농업단체 대표들이 농식품부의 불통을 문제 삼아 민관 협치기구인 친환경농업정책협의회의 위원직을 집단 사퇴한 게 단적인 예다. ‘제5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둘러싼 갈등이 발단인데, 6월29일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회의에서 사퇴 발표가 나와 충격을 안겨줬다. 사전 협의가 원활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난맥상이다.

물론 정체성이 다른 기관·단체간 협업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협업보다는 조직간 영역다툼이나 신경전을 펼칠 때가 훨씬 더 많다. 가끔씩 싸움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직의 힘으로 상대적으로 힘없는 기관·단체를 누르거나 ‘말 안 들으면 팬다’는 식으론 곤란하다. 조선시대에도 매질당한 하인이 야반도주하거나 주인을 해치는 일이 심심치 않았다는 점을 교훈 삼아야 한다.

미운 조직이라고 협업을 포기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고쳐서 활용해야 한다. 그런 조직도 농업·농촌 발전과 농민의 실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농업계 자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농업·농촌의 여건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내부든 외부든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공유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협업이다. 농업계가 뭉쳐야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남우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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