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추 한포기가 10㎏이 넘어요. 세포기 한망이 10㎏인데, 커도 너무 컸죠.”
겨울을 맞은 전남 해남·진도·신안 등 배추 주산지의 들녘이 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수확 적기를 놓친 가을배추와 아직 수확을 시작도 못한 겨울배추의 진한 초록색 이파리들이 밭마다 가득이다. 긴 가뭄에도 무럭무럭 잘 자라서 포기당 7㎏·8㎏은 보통이고, 10㎏이 넘어 성인 남자도 들기 힘들 만큼 커버린 것들도 있다.
농작물 잘 자라고 남들보다 더 많이 수확하려고 때 맞춰 물 주고 비료 주는 것이 농부들의 마음인데, 요즘 배추농가들은 너무 많이 커버린 배추를 보며 한숨 쉬는 것이 일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추 표준규격은 세포기 한망에 10㎏이다. 한포기당 3∼3.5㎏이 표준크기라는 뜻이다. 시장에서 농산물 크기와 무게는 상품성과 직결된다. 대개 크기가 작고 무게가 덜 나가는 것이 가격을 덜 받지만 너무 크거나 무거운 것도 가격을 잘 받지 못한다. 그러니 포기당 무게가 표준규격의 두배 세배 나가는 배추가 값을 잘 받을 리 없다.
좋은 값은커녕 출하 자체도 힘들다. 배추의 가장 큰 소비처인 김치공장들은 포기당 3㎏ 안팎의 배추를 선호한다. 절단 등 일부 공정이 기계화돼서 규격을 벗어난 원물은 사용하기가 힘들뿐더러 포장규격을 맞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 출하용은 망포장을 해야 하는데, 기존 표준규격 망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너무 많이 자란 배추는 갈 데가 없다는 뜻이다.
생육이 과잉되면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농가들도 잘 안다. 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9월까지만 해도 망당 2만3000원대까지 올랐던 가격이 불과 석달 만에 3000원대로 떨어졌다. 산지에서 체감하는 가격은 이미 2000원대다. 출하량은 늘었는데 김장 소비는 급감한 탓이라고 했다. 팔리지 않은 배추가 가공공장 창고까지 가득 채우자 시장 구매력이 급격히 저하됐고 배추는 갈 곳을 찾지 못했다.이미 수확을 끝내야 했을 가을배추는 절반밖에 수확을 못했고 겨울배추는 언감생심 시작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와중에 11월 내내 날씨가 따뜻해서 무럭무럭 자라더니 한포기가 10㎏이 돼버린 것이다. 산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3.3㎡(1평)당 30㎏ 수확이 평년 수준인데 올해는 40㎏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대로 두면 꽃대가 올라오고 꿀통이 생겨 결국 수확 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결국 농가들은 가을배추 산지 폐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들여 키운 배추를 수확도 못하고 갈아엎는 일이 흔쾌한 농부는 한명도 없다. 하지만 겨울배추라도 살리려면, 배추가 비정상적으로 크는 일을 멈추려면 폐기밖에는 답이 없다.
이상희 (전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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