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농촌 산업단지에 대한 환상

입력 : 2022-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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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농촌에 공장이라도 들어와야 인구가 늘지.”

농촌에 산업단지가 난립해 문제라는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지난달 공익법률센터 농본이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에 관해 연 토론회를 취재한 기사였다. 평일 한낮에 열린 토론회를 찾아올 만큼 산업단지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주민들이 봤다면 기가 막힐 반응이었다.

산업단지는 2008년 시행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 특례법’을 계기로 농촌지역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산업단지가 국내에 처음 들어선 1964년부터 올 6월까지 개발된 산업단지 1262곳 가운데 무려 42.9%(542곳)가 2008년 이후에 생겼다. 특례법이 여러 산업단지 가운데서도 일반 산업단지의 조성 절차를 크게 간소화하면서 농촌지역에는 농공단지보다 일반 산업단지가 더 쉽게, 더 많이 개발됐다.

농촌주민들은 산업단지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삶터와 일터 모두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농지 훼손, 마을공동체 파괴, 산업단지와 함께 설치되는 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 갖가지 문제들이 주민들 앞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들을 두고도 산업단지는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을 얻는다. 하지만 인구감소로 골머리 앓는 농촌지역에 산업단지가 보탬이 된다는 건 사실 농촌에 살지 않는 이들의 환상에 가깝다. 산업단지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생각이 막연한 거부감에서 나온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실제로도 산업단지가 들어선 농촌지역은 인구 증가 등의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 농본이 산업단지가 집중되고 있는 경기·충청의 2000∼2021년 읍·면·동 인구증가율 추이를 확인한 결과 산업단지가 들어선 지역 상당수는 오히려 인구가 줄었다. 게다가 2008년 이후 산업단지 미분양률은 높게 치솟았다. 산업단지가 필요 이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설령 산업단지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 한들 지역주민들이 바라지 않는다면 산업단지가 농촌지역에 들어설 명분은 찾기 힘들다. 정부는 농촌지역의 저개발·난개발을 막기 위해 마련한 농촌판 공간계획인 ‘농촌공간계획’을 추진하면서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참여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을 강조했다. 산업단지도 이에 예외일 수는 없다. 외부인의 헛된 기대보다는 농촌주민들의 바람이 그들이 사는 공간을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오은정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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