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취준생이었던 2016년 즈음도 취업난이 심각했다. 갈 곳 없는 침울한 기분이나 달랠 겸 겨울 바다라도 보자 싶어 인천으로 향했다. 시간 넉넉한 백수에게 마침 컨벤션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시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서 열린 채소종자산업 관련 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인 ‘2016 아시아·태평양 종자협회(APSA) 한국 인천총회’였다.
외국인 바이어 1000여명이 운집한 행사장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기분은 점점 더 우울해졌다. 밀푀유처럼 섬세한 이파리가 실하게 꽉 찬 중국산 배추 신품종, 일본 기업이 개발한 온갖 기능성 채소 신품종에 비해 국산 종자를 전시한 부스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여서였다.
시골 가서 농사짓는 걸 상상해봤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외국산 품종 로열티, 즉 종자값 좀 내면 국내에서 농사는 영 수지타산이 안 맞아 보여 어린 생각에도 한숨이 나왔다.
사실 세계 종자시장에 국내 종자산업을 대입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세계 종자시장은 날로 성장해 2021년에는 470억달러(67조원)대 시장규모에 이른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종자시장은 대륙별로 북미 권역이 전체의 37%를 점유하며 가장 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26%로 두번째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는 세계 30위, 전세계 시장 매출의 1%를 차지한다. 이는 종자산업 세계 1위 기업인 바이엘 매출의 6%에 불과한 수준이다. 물론 종자산업은 바이엘 등 10대 기업이 산업의 63%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매출이 기업 한곳 매출의 한자리 단위에 불과하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스타 품종들이 나오고 성장세도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품종 국산화 90%대를 이룩한 데 이어 비행기를 타고 수출길에 오르는 딸기를 필두로 얼마 전엔 신품종 감귤 <탐나는봉>이 오렌지 고장 북미시장에 수출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근내지방이 많아 고소한 흑돼지 신품종 <난축맛돈>만을 취급하는 제주 맛집 최강자로 꼽히는 식당 몇곳은 전국에서 온 손님들의 예약 전쟁이 펼쳐질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좋든 싫든 종자가 돈이 되고 종자값이 종잣돈이 되는 시대다. 우리 종자산업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시절 토종종자업체가 다국적 종자업체의 사냥감이 됐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너진 자존심도 세우고 종자산업이 미래 산업이라는 말이 헛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종자산업계가 보여줘야 할 때다.
이연경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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