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용어·개념 뒤섞여 사용
공익직불금 배제 농민 생겨
겸업 여성농은 수당 못받아
법률상 농민 요건 삭제하고
유엔 같은 포괄적 정의 절실
가짜농민 해결 대책 세워야

평생 농사짓다 은퇴해 농촌마을에서 물꼬를 관리하는 어르신은 농민일까 아닐까. 가축 수천마리를 키우지만 일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모두 맡기고 일주일에 한번 출근하는 사람은 어떨까. 이런 구분은 농정 영역에서 특히 중요하다. 한정된 예산을 누구에게 지원할지 결정짓기 때문이다. 농민수당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공익직불제가 확대되는 현시점에 ‘실제’ 농민을 분명히 정의하자는 움직임이 꿈틀댄다. 세계적으로 농민 개념 정의는 막 시작 단계다. 2018년말 유엔(UN·국제연합)이 채택한 농민권리선언에서 농민은 소농과 소작농, 여성농, 농촌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됐다.
우리나라는 여러 용어가 혼재돼 있다. 현실과 헌법에선 ‘농민’이 쓰인다. 법률용어는 ‘농업인’이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시행령’은 ▲1000㎡ 이상 농지를 경영·경작하는 사람 ▲농산물 판매액이 연간 120만원 이상인 사람 ▲연간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등을 농업인으로 정의한다. 행정용어로는 ‘농업경영체’가 쓰인다. 공익직불금을 포함한 각종 농업보조사업 대상이 농업경영체다.
문제는 ‘농민’과 ‘농업인’ ‘농업경영체’가 정확히 포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사짓는데도 공익직불금 대상에서 배제된 농민이 50만명에 달하고 일정 시간 겸업하는 여성농은 농민수당을 못 받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한편에선 이를 악용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거나 각종 보조금을 부당 수령하는 ‘가짜 농민’ 문제도 불거진다.
이에 농민을 새롭게 정의하고 각종 용어를 통일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는 최근 ‘농민·농업·농촌 정책 기본법(농민기본법)’ 제정 움직임과 함께 나온다. 식량안보 수호자로서 농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제정하기에 앞서 농민이 누구인지부터 명확히 규정하자는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진보당과 국민입법센터가 최근 마련한 농민기본법안은 농민을 농업종사자(주말농부 제외), 농촌에 거주하며 농산물 유통 등이나 공익 기능에 종사하는 사람 및 그 가족으로 정의했다. 이정희 국민입법센터 대표는 “농민을 탈락시키는 농지면적·판매액·종사일수 요건을 삭제하는 대신 유엔 농민권리선언 취지대로 농민을 포괄적으로 정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실제 농민을 정책 사각지대에서 구제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가짜 농민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민 재정의는 필요하나 그것만으로 현재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경영체 등록정보와 농지대장을 교차 검증해 ‘농업경영체에 속하는 정책 대상 농민(경영주)’에 ‘농업경영체에 속하지 않는 정책 대상 농민(피고용인·여성농·은퇴농 등)’은 포함하고 ‘정책 대상이 아닌 농민(가짜 농민)’은 제외하는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도 농민 재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수직농장 등이 주목받는데 여기 종사하는 사람을 농민으로 볼 것인지 등이 향후 농정에서 중요해질 수 있어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수립 중인 ‘제5차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농발계획)’을 통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보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양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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