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 이후 가격 하락세 지속
포전계약 상인 수확포기 잠적
전남지역 재배농 피해 ‘눈덩이’
“하루빨리 시장격리 등 대책을”

“이러다 배추농가들 다 죽게 생겼습니다. 폐기든 시장격리든 대책이 당장 필요합니다.”
김장철 이후 배추값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전남지역 배추 산지거래가 마비된 상태다. 포전거래 계약을 맺은 상인들이 수확을 포기한 채 자취를 감추는가 하면 장기간 거래해온 김치공장들도 발길을 끊으면서 수확작업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만 흐르는 사이 배추는 과숙돼 밭에서 썩어가기 시작했고 농가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밭에서 썩어가는 가을배추= 최근 전남 해남·진도 등 배추 주산지에서 수확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원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수확한 가을배추 재고가 여전히 많아 배추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값이 폭락해 시장에 내봤자 인건비도 못 건지고 손해를 보는 상황이 지속되자 산지유통인들도 아예 작업을 포기했다.
김철규 해남 문내농협 조합장은 “서울 가락시장 공식 가격이 10㎏ 상품 한망에 3000원 안팎이라지만 농가들이 가락시장에 배추를 출하하면 대부분 한망에 1500원 정도밖에 못 받는다”면서 “생산비의 절반도 안되는 값을 받기 위해 배추를 출하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출하가 중단돼 11월 중순에 마무리됐어야 할 가을배추 수확이 12월 중순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더욱이 정상적인 작기를 한달 이상 넘긴 배추는 몸집은 커지고 속잎은 꼬이는 등 상품성을 잃어가더니 급기야 속잎이 위로 솟아오르고 누렇게 썩어들어가 더는 판매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해남 배추농가 김형태씨(77)는 “정상적이라면 겉잎이 전체를 싸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속잎이 겉잎을 뚫고 솟아올라서 썩기 시작했다”면서 “조금 더 있으면 꽃대도 올라올 거라 이제는 쌈배추용으로도 팔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고 한탄했다.
◆포전계약 상인들 연락 끊고 잠적= 농가들은 포전거래 계약한 상인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해남·진도 등 전남지역 배추농가는 대부분 상인들과 포전거래 계약을 먼저 한 뒤 배추값 중 일부를 계약금으로 받고 재배를 시작한다. 종자와 비닐값은 상인이 부담하고 농가는 정식과 물관리를 담당한다. 출하 때가 되면 상인이 배추를 수확해 출하하고 농가에 나머지 배추값을 지불한다. 하지만 올해는 출하시기가 다 지나도록 작업은커녕 연락도 제대로 안돼 농민들은 속을 끓이고 있다. 한 산지 관계자는 “김장철이 시작되기 한달반쯤 전부터 상인에게 계속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전혀 안된다”며 “포전거래 계약한 농가들 대부분이 상인들과 연락이 안돼 배추값을 받기는커녕 배추 처리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종적을 감춘 상황에서 배추는 밭에서 웃자라다 못해 썩어들어갈 지경이다. 농가들이 배추값 일부를 계약금으로 받아서 상인들과 협의 없이 배추를 처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남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강병구씨(57)는 “8월 상인과 가을배추 2만3000평을 계약했는데 상인이 연락 두절되는 바람에 단 한포기도 수확을 못하고 밭에서 썩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다”면서 “이제는 결국 갈아엎는 수밖에 없는데 남은 배추값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내 생돈만 1000만원 넘게 들어가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속한 산지폐기 절실=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산지폐기나 시장격리 같은 비상조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산지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다. 특히 겨울배추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밭에 남아 있는 가을배추를 하루라도 빨리 시장격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경채 해남 황산농협 조합장은 “수확작업도 안되고 산지거래도 거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농가들이 생산비라도 건질 수 있게 하려면 겨울배추 산지거래가 살아나도록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겨울배추생산자단체협의회(회장 서정원·화원농협 조합장)는 15일 긴급회의를 열고 농림축산식품부와 전남도·해남군·진도군 등 겨울배추 주산지 시·군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서정원 회장은 “농가들이 피해를 많이 보면 내년에 봄배추 농사를 못 지을 수도 있다”면서 “농가들이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농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남=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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