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틀기 겁나요”…난방비 부담에 덜덜떠는 농촌주민들

입력 : 2022-12-12 00:00

등유값 2년전보다 두배 올라

연료비 아끼려고 가동 최소화

마을회관·경로당서 추위 피해

홀몸어르신 건강 해칠까 걱정

‘에너지바우처’ 지원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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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시 금구면 하신리에 사는 이정임씨가 보일러창고 기름탱크에 채워진 등유량을 확인하고 있다.

올겨울은 농촌주민들에게 유난히 춥게 다가오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가정 난방용 등유값은 아랑곳없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1∼2인가구가 많은 농촌에서는 난방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낮시간대 마을회관과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농촌주민들의 춥고 쓸쓸한 겨울나기 모습을 들여다봤다.


◆한파에 마을회관·경로당으로= 수은주가 영하 9℃까지 뚝 떨어져 동장군이 맹위를 떨친 4일 오전, 강원 춘천시 동내면 학곡3리 경로당. 예닐곱명의 어르신들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손을 호호 불며 한기를 피하고 있었다. 학곡3리엔 모두 490여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40%를 넘는다.

허식 노인회장(80)은 “등유는 농촌의 대표적인 난방연료인데 값이 너무 올라 비용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라며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있지만 경로당에 모여 마스크를 쓴 채 낮시간을 보내다 해질 무렵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국 농촌마을 대다수가 같은 상황이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2리의 이달수 이장(68)은 “기름값 부담에 보일러 틀기가 겁나 주민들 모두 보일러 대신 온수매트나 온풍기 같은 전기 난방기기를 사용하거나 너무 추우면 겨우 안방과 거실 정도만 보일러를 돌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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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전북지역 내 한 주유소에서 등유가 1550원에 판매되고 있다.

◆2년 새 난방 등유값 두배로 ‘껑충’= 농촌주민들이 한겨울에도 보일러 가동을 최소화하는 이유는 난방용 등유값이 올라도 너무 오른 탓이다. 오피넷(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난방용 등유의 전국 평균 판매가격이 7일 기준 1ℓ당 1584.77원으로 집계됐다. 최고점을 찍었던 7월 1686원에 비하면 다소 낮아진 것이지만 1년 전(1100원)에 견주면 무려 44%나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2년 전 가격 818원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급등한 수준이라 주민들이 체감하는 난방비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전북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의 주민 최준규씨(64)는 “지난해에도 난방용 등유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올겨울엔 더 많이 올라 난방비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도시에선 난방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시가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농촌에서는 이마저도 보급률이 현저히 낮고 이용이 불가능한 마을이 많아 주민들의 겨울나기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난방비 부담, 고령가구 건강 위협= 난방용 등유값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농촌에서는 한숨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북 김제시 금구면 하신리에 사는 이정임씨(73)는 “지난해에는 등유 200ℓ를 20만원대에 샀는데 올해는 30만원대로 올라 걱정”이라며 “한달에 400ℓ를 사용한다고 보면 최소 60만원을 난방비로 써야 한다는 건데 어느 집인들 춥다고 맘 편히 제대로 난방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확 커진 난방비 부담에 농촌 고령자들이 가정 난방을 최소화하면서 건강 악화까지 우려된다는 점이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의 김창남 이장(57)은 “안 그래도 홀몸어르신들은 자녀가 방문하지 않으면 연료비 걱정에 난방시간을 최소화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올해처럼 난방비 부담이 커지면 더 난방시간을 줄이려 한다”며 “추운 겨울 홀몸어르신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 동내면 학곡3리의 조창묵 이장(64)은 “경로당에도 잘 안 나오시는 홀몸어르신들 집에 찾아가보면 밤에도 보일러 켜기를 겁내 적정온도 이하로 춥게 생활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연세도 많은데 이러다간 자칫 없던 병마저 얻게 되실까 심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전남 무안군 삼향읍 송산리의 강성욱 이장(52)도 “보통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낮에 경로당에 있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 한두시간 보일러 틀어 냉기만 뺀 뒤 전기장판 틀고 주무시는 게 일상”이라며 “자칫 건강을 해칠까 걱정스럽다”고 한숨지었다.


◆에너지바우처 지원 확대 절실= 올겨울 농촌지역 난방비 부담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전기·가스·지역난방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올해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자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과 금액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에너지바우처는 기초생활수급 세대 가운데 노인·영유아·장애인·임산부 등이 포함된 세대만 지원받을 수 있어 사각지대가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다. 일부 지자체가 난방비 긴급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제주특별자치도는 기초생활수급 세대 가운데 에너지바우처 미지원 6767가구를 대상으로 가구당 10만7000원을 지원하고, 복지생활시설 146개소에도 개소당 평균 97만원을 지원한다. 경남 남해군은 홀몸어르신·노인부부 가구 등 노인 가장 가구 600세대에 세대당 6만원의 난방비를 최근 현금으로 지급했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농촌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은데 기름을 때면 난방비 부담이 도시보다 훨씬 크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농촌주민들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대책을 적극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춘천=김윤호, 양평=최문희, 김제=박철현, 서귀포=심재웅, 무안=이상희, 홍성=서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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