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함평 우시장, 쉼없는 경매…이어지는 탄식과 환호

입력 : 2022-11-25 00:00

[우리동네 핫플] (12) 전남 함평 우시장

368마리 동시 수용 가능한 규모

새벽부터 팔고 사려는 사람 몰려

가축 상태에 따라 가격 천차만별

입찰 끝난 소 줄행랑 소동에 술렁

꿈쩍하지 않아 팽팽한 줄다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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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우시장 계근대에서 체중이 확인된 소가 새 주인의 트럭으로 향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사고파는 사람이 모이는 시장. 유년시절이나 지금이나 휘뚜루마뚜루 시장 구경은 늘 신이 난다. 왁자지껄하며 흥정하는 소리, 각양각색 물건 탓인지 도깨비에 홀린 듯 정신이 팔리기 일쑤다. 전남 함평에는 12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우시장이 자리 잡았다. 소 한마리 보기 어려운 콘크리트 성에 사는 도시민에겐 별천지가 펼쳐질 만한 곳이다. 새 주인을 기다리는 수백마리 소가 도열해 있어 마치 중국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방불케 한다. 함평에 여행 온 이방인이라면 가장 먼저 우시장부터 들러보는 것은 어떨는지!


우시장, 시장경제 축소판이었다

천지개벽할 소리다! “움머머머머∼ 아오오오∼ 으허허허엉∼ 무에오∼.”

15일 새벽 갓밝이 전부터 문을 연 함평 우시장은 수를 가늠할 수 없는 소들의 합창에 천장이 떠나갈 듯하다. 가축이 뿜어내는 세찬 입김이 찬 공기 안에서 똬리를 튼다. 소를 팔러 온 농민 표정엔 초조함이 묻어나고, 좋은 소를 고르려는 상인의 눈매는 삭풍처럼 매섭다.

함평 우시장은 찾기 꽤 어렵다. 내비게이션 검색창에 공식 명칭인 ‘함평가축전자경매장’을 넣어야 제대로 된 주소 ‘학교면 월산리 1392-9’로 안내해준다.
 

시장 건축면적은 1875㎡(570평)로 행정을 보는 사무실 서너칸, 소 한마리가 들어가 대기할 수 있는 수백개의 공간, 소를 이동시킬 차량을 위한 주차장 등으로 구성된다. 사무실 맞은편 벽면 맨 위쪽에는 만인의 시선이 쏠리는 경매 전광판이 쉼 없이 돌아간다. 송아지·번식우·비육우를 포함해 한번에 368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지난해 이곳에서 거래한 한우는 1만2324마리에 이른다. 과거 지저분한 우시장을 연상한다면 오산! 바둑판처럼 반듯한 현대식 시설은 새물내가 날 듯 깔끔하다.

시장을 운영하는 함평축협의 양연종 컨설팅지원과 계장의 설명이다. “원래는 오일장에 맞춰 열렸는데 지금은 매주 화요일 아침에 여는 요일장으로 바뀌었어요. 아마 국내 우시장 가운데 처음일 걸요. 원래 전남에서는 함평과 해남 우시장이 양대 산맥이었죠. 함평 우시장이 전남 소값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랍니다.”

우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경제 축소판이다. 가격산정인이 가축 상태를 보고 최저가를 내놓으면, 순식간에 경매가 이뤄지고, 결과값이 전광판에 공시된다. 기골이 장대한 것은 비싼 값이 매겨지지만, 깨깨 말랐거나 상처 입었거나, 또는 연령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유찰에 유찰을 거듭한다. 장내 분위기는 탄식과 환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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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우시장의 경매 모습. 경매사가 해당 소의 연령·몸무게·유전자 등의 정보를 응찰 상인에게 전달하고 있다. 맨 뒤 전광판에는 낙찰된 소의 1㎏당 가격이 공시된다.

이날 최고가는 1㎏을 기준으로 1만1650원. 만일 소 몸무게가 700㎏이라면 주인은 815만5000원을 손에 쥘 수 있는 셈이다.

때론 책 밖에서 귀한 지혜를 얻기도 한다. 한 상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기자님, 보셨죠. 같은 날 낙찰된 소라도 가격대가 천차만별인 걸…. 가끔가다 말도 안되게 값싼 한우가 인터넷이나 도롯가 식당에서 판매되잖아요. 그게 다 상태가 좋지 않은 쇠고기라는 거예요.”

우시장이 알려준 교훈은 ‘싼 게 비지떡’이다.


인간과 소의 팽팽한 줄다리기

“사료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지, 이를 못 버틴 농가가 죄다 출하를 하지, 소값이 안 떨어질 수 있나? 참, 축사를 닫든지 해야지 원….”

학교면 월호리에 사는 김동수씨(70)의 혼잣말에 주변 공기가 무거워진다. 유찰된 소가 참여하는 3차 경매가 슬슬 마무리돼가자 쇠파리만 날릴 것 같은 파장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런데 별안간 장내가 술렁인다. 입찰이 끝나고서 트럭으로 이동해야 할 소 한마리가 줄행랑을 친 것이다. 어찌나 힘이 드세고 빠른지 시장 주변을 여러 바퀴 돈다. 순라군이 범인을 쫓는지, 범인이 순라군을 쫓는지 모를 되술래잡기가 좀처럼 끝나질 않는다.

한 농민의 설명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기자 양반, 몸조심해요. 여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종종 소한테 치이기도 하니깐!”

경매 과정 이후 다시 한번 묘한 긴장감이 장내에 엄습한다. 계근대에서 무게 측정을 마친 소를 트럭 안으로 이동시키는 시간이다. 소에게도 인간 성격을 16개로 분류해놓은 엠비티아이(MBTI) 같은 걸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온순하고 차분한 녀석은 새 주인이 줄을 당기는 족족 트럭에 안착한다. 그런데 대부분 소는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편안한 축사를 떠나 낯선 사람들, 낯선 건물, 낯선 동족들 속에 둘러싸인 터라 여간해선 꿈쩍도 않는다.

여기저기서 인간과 소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친다. 앞에선 끌고, 뒤에선 밀지만 가재걸음 하는 소 앞에 진땀 빼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아이고! 이런 고집 센 벽창우는 처음일세…. 이눔아, 어서 빨리 차에 타거라. 갈 길이 구만리여∼.”
 

트럭에 올라탄 비육우는 이제 도축장으로 향한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는지 더는 탈출의 몸부림을 치지 않는다. 알사탕만 한 눈만 끔뻑일 뿐이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최후를 앞둔 순교자 같다.

현대인이 직면한 먹거리 위기는 ‘생산과 소비의 괴리’에서 온다. 화려하게 포장돼 기성품처럼 진열된 선홍색 고기가 얼마 전까지 생명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곳 우시장에서 ‘이 세상에 당연한 희생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찾는다. 이제 간혹 식탁에 불고기라도 올라오면 짧은 시간이나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명을 다해 인간에게 먹을거리가 돼준 가축에게 감사를 표한다.

‘지나치게 맛에 탐닉하지 말 것! 적당한 양을 정해 그릇에 담고 음식은 남기지 말 것!’

우시장에 다녀온 후 마음속에 아로새긴 불문율이다.

함평=이문수 기자, 사진=현진 기자

 

우시장 방문하기 전 알아둬야 할 사항은?

●장화는 필수예요=시설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지만 가축분뇨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장화를 챙기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혹 장화가 없다면 우시장 중심부보다는 주변에서 구경하는 것이 좋다.

●탈취제도 요긴하답니다=분뇨냄새가 생각보다 심하진 않지만, 옷에 밸 수 있다. 우시장을 떠나 자가용에 탑승하기 전 탈취제를 뿌리면 한결 낫다. 

●소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세요=자녀가 있는 방문객에게 꼭 필요한 조언! 소가 묶여 있긴 하나 뒷발을 차는 등 돌발행동을 할 수 있다. 소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 이유다.

●시장이 매일 열리지 않아요=우시장이 매일 서는 것이 아니다. 시장 문을 여는 일정을 잘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함평 우시장은 매주 화요일 열린다. 오전 5시 이곳을 운영하는 함평축협 직원이 출근해 경매 준비를 한다. 방문객은 오전 8시를 전후해 방문하면 충분히 경매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시끄럽게 떠들면 안돼요=우시장은 사실 관광지가 아니다. 농민과 상인간 거래가 이뤄지는 경매장이다. 시끄럽게 떠들면 경매를 방해할 수 있다. 또 소들이 예민한 상태라 큰 소리를 내면 돌발행동을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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