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장소영 살림꽃협동조합 이사
세월호순례길서 만난 친구 따라온후
매동마을 ‘살림꽃’ 매력에 눌러앉아
옷 등 기증받은 물품 재활용 ‘큰 보람’
일상에서 소속감 느껴 “고향 같아요”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는 지금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곳이 있다. 삼정산 초입에 있는 ‘살림꽃협동조합’ 공방이다. 이곳엔 조끼·스웨터·청바지·스카프 등 없는 옷이 없어 가을맞이 쇼핑하기에 좋다. 심지어 모든 옷이 한벌에 1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마을 보물창고인 이곳을 매일 쓸고 닦고 관리하는 사람은 귀촌 5년차 장소영씨(26)다.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이 좋아 이곳을 찾아왔다.
“전에는 혼자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면서 살면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혼자 살아보라고 하면 이제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제가 달라졌죠. 여기에 와서 배운 점이 많아요.”
장씨는 2018년 1월 연고도 없는 남원으로 왔다. ‘세월호 순례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친구를 무작정 따라온 것. 세월호 순례길은 전북 군산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장씨는 20일 동안 매일 20㎞ 이상을 걸어 순례길을 완주했다. 그도 처음엔 발에 물집이 잡히고, 체력이 따라주질 않아 포기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걸을수록 ‘혼자’가 아닌 ‘함께’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말없이 물 한병 건네주는 옆 사람에게 의지도 하고 앞사람이 다쳤을 때 짐을 나눠서 지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종착지에 도착할 때쯤 정든 사람들과 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원래 부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 모으는 것에 열중했는데 혼자 쳇바퀴 돌듯 바쁜 생활을 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긴 싫더라고요. 그래서 ‘공동체 생활’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친구를 따라 남원으로 귀촌했죠.”
난생처음 방문한 남원에 장씨를 눌러앉게 만든 것은 매동마을의 자랑 ‘살림꽃’이다. 살림꽃은 10년 전부터 운영돼온 자원순환가게다.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지난해부터 협동조합으로 규모를 키웠다. 오래전부터 주민들은 집에서 입지 않는 옷을 이곳에 기증하고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시계·식기류를 내놨다. 이를 깨끗이 정리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혹시 얼룩이 심하거나 너덜너덜해져 판매할 수 없는 옷이 들어온다면 수선해서 새 용도로 재탄생시킨다. 소매가 떨어져나간 티셔츠는 모자가 되고 색이 바랜 청바지는 가방이 된다. 최근에는 매달 기증되는 물품이 100개가 넘고 팔리는 것은 300개 가까이 된다.
“제가 지금 입은 옷도 살림꽃에서 산 거예요. 한번은 길에서 제가 입은 옷을 기증한 사람을 만난 적도 있어요. 어렸을 때 산 옷이라며 그 당시에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정말 신기했죠. 버려질 뻔한 옷에 제가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입고 다니는 거잖아요. 뿌듯하더라고요.”
장씨는 대부분 시간을 살림꽃 공방에서 보낸다. 이곳에서 마을주민들과 바느질 수업을 하고 조합원들과 어떤 물품을 만들면 좋을지 회의도 한다.
살림꽃에서 하는 활동을 널리 알리고자 근처 도통동 용성중학교와 경북 안동대학교로 수업을 나가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자원을 재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해주며 직접 바느질해 헌 옷 수선하는 법도 알려줬다. 장씨는 활발히 활동한 끝에 이젠 어엿한 살림꽃협동조합 이사 자리에도 올랐다.
“온빛, 안녕하세요”라며 누군가 공방 문을 열고 장씨에게 인사를 건넨다. 매동마을에서는 서로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스칼렛·보리·타미·봄 등 각자 원하는 호칭을 쓴다. 이들은 모였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아리 얘기를 한다. 이곳에선 각자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삼삼오오 모여 동아리를 결성해 인터넷으로 독학하거나 외지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도 듣는다. 장구·판소리·댄스·요가 등 동아리 종류도 다양하다.
“제 집이 언덕 꼭대기에 있어요. 집에 가다보면 꼭 그늘 아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어르신들을 마주치죠. 매일같이 인사하고 대화에 끼어들면서 친구처럼 지내게 됐어요. 지금 집도 살 곳을 구하고 있단 제 푸념에 어르신이 발품 팔아 찾아주신 데에요. 이렇게 일상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서 어떨 땐 고향 같기도 해요. 누구든 외롭거나 혼자여서 힘들다고 여겨진다면 이곳에 와서 안정감을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남원=서지민 기자, 사진=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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