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우리말 서툰 외국인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요”

입력 : 2022-10-19 00:00

[농촌 Zoom 人] 통역 봉사자 방대한씨

6년간 준비해 2012년 한국 국적 취득

한때 방송 출연, 앨범 내며 가수 활동

방글라데시어·힌디어·영어 소통 가능

병원·경찰서 등서 외국인 대변인 역할

“제2·제3의 방대한 탄생해 도움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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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씨(왼쪽)가 충북 음성군외국인지원센터에서 한 외국인에게 서류 작성법을 안내해주고 있다.

강자만이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편협하다.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돕는 일도 허다하다. 형편이 빠듯해도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을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어서다.

충북 음성에 사는 방대한씨(47)는 한국 사회 ‘소수자를 돕는 또 한명의 소수자’다.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 한국인이다. 방씨 성을 쓴 것도 태어난 땅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1995년 스무살 때 이역만리 한국 땅을 밟아 우여곡절 끝에 2012년 한국 국적을 땄다.

방씨 일과는 때론 24시간이 모자란다.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군청 환경미화원 공무직으로 사명을 다한다. 퇴근 후에는 민간 통역관으로 변신한다. 방글라데시어는 물론 힌디어·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어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인구 10만명이 조금 안되는 음성에 외국인이 9000명 정도 살고 있거든요.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요. 농촌·병원·경찰서·군청·공공기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방씨는 특히 병원을 많이 간다고 했다. 의료 혜택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의 어려움을 대변해주고 도움 받을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주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의 선행이 쌓여 지역사회에 조그만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제가 자주 다니는 한의원이 있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원장님이 ‘좋은 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외국인 근로자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방대한씨가 데려온 외국인이 있으면 모두 무료로 치료해주겠다’고 하셨어요. 제 노력을 알아주는 분이 있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그가 살아온 여정은 마치 한편의 소설 같다. 경험이 워낙 다양하고 국적을 취득한 과정도 녹록지 않아서다. 자국 국립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던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열처리 공장 등에서 주간·야간 할 것 없이 5년간 땀 흘려 일했다. 그러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이후 외국인 비자 문호가 확대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방씨 역시 이를 기회 삼아 한국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주경야독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우연하게 ‘한국에 사는 끼 많은 외국인’이라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면서 방송 섭외가 줄을 이었다. 방송 일정을 다 소화하기 어려워 일부러 시급제 일자리만 구하기도 했단다. KBS ‘1박2일’ ‘1대100’ ‘아침마당’ ‘전국노래자랑’은 물론 영화 <방가? 방가!>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명성은 한반도 밖에서도 자자했다. 일본 오사카, 중국 칭다오 등에서 열린 행사에 초청받으며 인기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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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 가는 방대한씨(맨 오른쪽)와 그 가족. 그는 현재 음성읍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 두 자녀와 함께 화목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 6년간 준비 끝에 2012년 9월 극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면접관 앞에서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일대기를 이야기해주고, 애국가를 한소절도 틀리지 않고 불러 높은 점수를 얻었다. 2014년에는 가수 박상철씨의 지원을 받아 앨범을 내며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 인기 방송인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방씨. 문득 지역사회에 안착해 그간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서 2015년말 방글라데시에 살던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지금은 딸과 아들, 두 자녀의 아버지다. 올해 1월에는 환경미화원 시험에 응시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줄곧 이방인의 삶을 영위해오다 ‘진짜 한국사람’이 된 방대한씨에게 마지막으로 소회를 물었다. 그는 “다문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운을 뗐다.

“이곳 음성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가량이 외국인이에요. 누군가는 농촌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산업현장에서 빈자리를 메우며 땀 흘리고 있답니다.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세요. 그럼 제2·제3의 방대한이 탄생해 한국 발전의 한축을 담당하는 당당한 구성원이 돼 있을 테니깐요. 인종 사이 벽을 뛰어넘어 무지개처럼 다채롭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꿈꿔보겠습니다.”

음성=이문수,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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