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13) 충남 천안시청
‘천안 호두과자엔 국산 호두가 없다’
10여년전 여론 뭇매에 특단의 대책
시청 청사 안에서 ‘호두과자점’ 운영
우리농산물로만 만들며 명성 지켜
‘겉바속촉’ 그안엔 큼직한 광덕호두

‘천안에 호두과자가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요즘 간절해지는 주전부리가 있다. 가운데를 무지르면 벌건 팥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한입 베어 물면 엇구수한 호두기름이 혀를 이롭게 하는 호두과자다. 문득 충남 천안에 호두과자가 아직도 있을지 궁금했다. 기자가 말하는 ‘천안 호두과자’는 천안산 호두가 들어간 ‘진짜 호두과자’를 뜻한다. 외국산이 우리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인 지금 국산 호두가 들어간 과자를 찾는다는 건 미션임파서블일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안고 무작정 호두과자의 성지, 천안으로 향했다.

●시청에 ‘진짜’가 나타났다=“천안에 국내산 호두가 들어간 ‘진짜 호두과자’가 있을까요? 없을 것 같은데….”
“기자님,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세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청사 안에서 맛보실 수 있습니다.”
15일 오전 9시 천안시청을 찾아 국내산 호두가 들어간 과자 행방을 물었더니 유선자 행정지원과 주무관의 대답이 시원하다.
청사 주차장에서 입구를 통과해 1층 복도를 가로질러 가면 끝에 한갓진 카페가 하나 나온다. 들어가는 문을 기준으로 카페 왼편에 ‘천안 명물 호두과자’라는 간판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광덕호두’가 들어간 과자를 만들어낸다. 호두만이 아니다. 팥과 밀 모두 천안에서 난 농산물을 쓴다. 천안 호두과자 명맥을 잇는 곳이 바로 여기렸다.
3차원 세계에서 자고로 명소란 장소는 물론 시간 조건도 중요하다. 9시에 영업을 개시하는데 30분 정도 기다리면 갓 구워낸 문문한 호두과자가 탕탕 소리를 내며 기계에서 튀어나온다.
‘진짜 호두과자’ 맛을 물어보신다면? 안 먹어봤다면 개코쥐코 말을 마시라. 지금까지 먹어온 휴게소 호두과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다. 호호 불어가면서 먹어야 할 팥소는 다른 과자랑 견줘 단맛이 덜하고 빵은 약간 거친 감이 있다.
심혈을 기울여 빵을 굽던 문흥대 기사(70)가 한마디 거든다.
“팥에 들어가는 설탕을 20%가량 줄였어요. 팥 본연의 단맛을 살리려고요. 그리고 우리밀 식감은 약간 거친 게 특징인 거 아시죠?”
좋은 재료의 향연, 그 화룡점정은 단연 호두가 장식한다. 호두 4분의 1 이상이 과자에 들어가니 고소함과 단맛이 서로 경쟁하듯 미각을 공략한다.
호두는 동남구 광덕면에서 나는 것을 쓴다.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고소한 맛이 오래가 국내에서도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지역 먹거리 명맥을 잇는 만큼 시장을 포함한 시청 공무원의 호두과자 사랑도 남다르다. 전국 주요 행사 등에 참석할 때 선물용으로 두 손 가득 챙겨 간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천안 호두로 만든 과자라고 하면 남녀노소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없다”면서 “재료가 모두 국내산이라 건넬 때 자랑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교통 요지에서 꽃피운 주전부리=‘왜 천안은 호두과자 성지가 됐을까?’
누구나 한번쯤 품을 만한 의문이다. 무엇보다 천안은 교통의 요지였다.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으로 시작하는 민요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한양을 가려면 이 지역을 꼭 통과해야 하는 삼남대로 중심이었다.
기찻길이라고 예외랴. 과거에는 케이티엑스(KTX)와 같은 고속열차가 없었으니 탑승 시간이 만만찮았다. 전남 목포나 부산에서 출발한 서울행 기차는 천안에서 한참을 쉬었단다. 이에 착안한 한 과자점 주인이 호두를 넣은 주전부리를 객차와 역사 안팎에서 팔았단다.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이 천안 호두과자의 감미로운 맛에 반했으니 전국으로 명성이 퍼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터. 전국 어느 휴게소를 가도 호두과자를 팔지 않는 곳이 없는 이유다.
양질의 호두를 구하기 쉽다는 점도 한몫했다. 천안은 한반도 최초의 호두 재배지로 알려진 곳이다. 700여년 전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이라는 사람이 원나라에서 호두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서는 나무는 지금의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기 집 앞마당에 뿌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시배지답게 천안에서는 330㏊(100만평)에서 120여농가가 연간 호두 130t을 생산한다.
빨리 만들어 팔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문씨는 “기계 예열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보통 과자 하나를 만드는 데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면서 “과거 열차에서 삶은 달걀과 사이다·호두과자를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했다.
●뿔난 호두농가 반격에 나서다=사실 시청 건물에서 국내산 재료로 만든 호두과자를 판매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2010년초 한 언론에서 ‘천안 호두과자엔 국산 호두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며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에 지역 먹거리 명맥을 이어가겠다며 2012년 시청에 지금의 과자점이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다른 호두과자점의 저항이 거셌다. 외국산 호두를 쓰는 업체에서 영업에 타격을 입을까 봐 시청에 호두과자점이 들어서는 것을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절충안이 나왔다. 당시 호두과자점 입점을 추진했던 한 공무원의 말이다.
“여기서 파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하루에 24개들이 선물용 세트를 50개 이상 판매하지 못합니다.”
‘국산 호두가 들어가지 않은 호두과자’가 만연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홍순필 천안호두유통센터 대표가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얘기했다.
“몇몇 과자점에서 접촉을 해오는데 실제로 우리 호두를 쓰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단가가 맞지 않는다며 외면하는 거죠. 외국산 호두를 쓰면서 ‘천안 호두과자’라고 파는 게 과연 맞느냐 이거죠.”
뿔난 호두농가가 제대로 된 호두과자를 탄생시켜보자며 힘을 합쳤다. 올해 11월 광덕면에 ‘천안 호두과자 판매장’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만드는 과자는 개성이 넘친다. 먼저 밀 대신 우리쌀을 쓴다. 안에는 팥이 아니라 노란색 단호박 소가 들어간다. 일반 호두과자보다 좀더 쫀득하고 단맛이 강하다. 영농조합 직영이라 과자에 들어가는 호두도 큼지막하다.
홍 대표는 “과자점이 천안·공주간 도로에 있어 일부러 과자를 사러 오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면서 “앞으로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고품격 호두과자를 생산하는 데 열정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안 명소 ‘조선의 별이 된 홍대용’
천안에 호두과자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인 만큼 곳곳에 둘러볼 만한 명소가 많다.
천안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1783년)의 고향이다. 그래서 동남구 수신면에 홍대용과학관이 들어섰다. 1층엔 국내 최초로 들어선 3D 천체투영관이 있어 전용 안경을 쓰고 대형 반구로 된 화면에서 밤하늘 별자리나 우주유영 등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3층에는 홍대용의 삶, 교류했던 인물, 천문학과 과학사상을 접하게 된 경로 등을 배울 수 있는 ‘홍대용 주제관’이 운영된다. 4층 관측실에서는 태양의 흑점과 행성ㆍ성운ㆍ달 등을 망원경 등으로 관찰할 수 있다.
천안에는 전국 수학여행 필수 코스인 독립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제2전시관, 독립운동 투쟁사를 엿볼 수 있는 제3전시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6전시관 등으로 구성됐다.
이밖에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우거진 태학산 자연휴양림, 중부권 최대 온천단지로 주목받는 천안종합휴양관광지, 쇼핑몰ㆍ영화관ㆍ먹자골목 등이 어우러져 있는 아라리오광장도 천안에서 손꼽히는 명소다.
천안=이문수 기자,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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