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푸른 차밭서 몸놀리茶…따스한 녹차 한잔에 몸녹인茶

입력 : 2022-12-05 00:00

[차 이야기] 전남 보성 ‘청우다원’ 방문기

겨우내 영양분 응축 봄에 어린잎 ‘톡’

일찍 딸수록 향이 은은 떫은맛 덜해

우전·세작 부드러워 애호가들 ‘선호’

덖음·유념 정성껏 반복해야 깊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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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에서 ‘청우다원’을 운영하는 안명순(76)·박윤순(73)씨 부부가 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면 따뜻한 차 한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추위에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이려고 천천히 차를 우려내 마시다보면 어느새 온몸에 열이 오르며 노곤노곤해진다. 차는 종류에 따라 풍기는 향, 우러나는 빛깔이 다양하다. 찻잎을 수확하는 비결부터 찬찬히 음미하는 방법까지 무궁무진한 차의 세계를 알아봤다.

원속 사진은 녹차 잎을 우리는 과정으로, 따뜻한 물을 넓은 그릇에 따라 한 김 식힌 다음 찻잎을 우려내야 향이 은은하게 난다.

“녹차 한잔 드릴까요?”

오랜만에 만나거나 혹은 처음 인사하는 손님을 대접할 때 사람들은 녹차를 내놓곤 한다. 은은한 향과 옅게 느껴지는 쌉싸래한 맛에 호불호가 거의 없어 쉽게 손이 가서다. 하지만 마시기는 쉬워도 녹차 잎을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녹차는 차나무에서 그해 새로 자란 가지에 난 어린잎을 우려내 마시는데 새순을 제때 맞춰 수확하는 것부터 까다롭다. 어린잎은 조금만 세게 쥐어도 으스러지고 시기를 놓쳐 잎이 너무 자라면 떫은맛이 강해진다. 맛 좋은 녹차를 2대째 생산하고 있다는 전남 보성 ‘청우다원’을 찾았다.

청우다원은 보성읍 몽중산 중턱에 있다. 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산길을 5분 정도 오르니 추운 날씨에도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는 드넓은 농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볕을 충분하게 받는 남향의 경사지 14만1074㎡(4만2600평) 규모에 차나무가 빼곡히 자리 잡았다. 차나무는 물이 조금이라도 고여 있으면 뿌리가 금방 썩기 때문에 이렇게 경사진 산 중턱에서 재배하는데 높이가 어른 허리까지 온다. 가까이서 보면 잎이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작고 도톰해 생김새가 얼핏 동백나무 잎을 연상시킨다. 이 잎은 날이 추워도 낙엽 지지 않아 사시사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선사한다. 청우다원을 운영하는 안명순 명인(76)은 “차나무는 겨우내 영양분을 응축했다가 이듬해 봄에 날이 따뜻해지면 어린잎을 ‘톡’ 하고 틔운다”고 설명했다.

이곳 말고도 보성엔 400㏊가 넘는 광활한 차 농원이 펼쳐져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이곳에서 예부터 차나무가 자생해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보성엔 산·바다·호수가 어우러져 있어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일교차가 심하고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잘 자라는 차나무에 적당한 곳이다. 국내 녹차 생산량의 40%를 보성에서 책임지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찻잎을 수확하는 일은 이른 봄부터 시작한다. 잎을 수확한 시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맛과 향도 달라진다. 일찍 딴 잎일수록 향이 은은하고 떫은맛이 덜해 마시기 좋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절기 ‘곡우(양력 4월20일)’보다 5일께 먼저 딴 찻잎을 ‘우전’이라 한다. 곡우가 지나고 딴 잎은 ‘세작’이라 부르는데 세작은 찻잎이 마치 참새의 혀를 닮았다고 해서 ‘작설차’라 불리기도 한다. 우전과 세작은 잎이 연하고 맛이 부드러워 차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이후에는 차례로 ‘중작’과 ‘대작’이 나온다. 안 명인은 “찻잎을 채취할 때는 새순 한개와 이를 덮는 어린잎 2개를 같이 딴다”며 “새순은 뾰족한 창끝을, 어린잎은 깃발을 닮았다고 해 1창2기라고 표현한다”고 일러줬다.

녹차는 찻잎을 수확한 날 바로 가공해야 맛과 향이 변하지 않는다. ‘덖음’과 ‘유념’을 3∼4번 반복하면 우리가 마시는 녹차가 완성된다. 덖음이란 320도로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찻잎을 볶는 과정이다. 물이나 기름을 넣지 않은 가마솥에 찻잎을 바로 올리면 ‘타닥타닥’ 소리가 난다. 이 과정에서 산화 효소가 파괴되고 수분이 증발해 더 이상 발효가 되지 않는다. 안 명인은 “아무리 뜨겁더라도 손으로 직접 찻잎을 뒤섞어줘야 수분이 얼마나 날아갔는지 알 수 있다”며 “10분 정도 덖어주는 게 좋은데 찻잎 양과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2∼3분씩 조정해야 한다”고 비법을 전했다.

덖기가 끝나면 손으로 찻잎을 비비는 유념 과정에 들어간다. 찻잎을 가마솥에서 꺼내 평평한 곳에 흐트러뜨린다. 손으로 찻잎을 문지르고 주무르며 상처를 낸다. 이때 생긴 상처 덕분에 찻잎이 뜨거운 물에서 잘 우러난다. 다만 너무 강하게 비비면 찻잎이 모두 뭉그러지니 ‘중용의 덕’이 필요하다. 유념이 끝난 찻잎은 다시 가마솥에 넣어 덖어준다. 처음보다는 낮은 온도에서 고루 익히는 과정을 여러차례 반복한다. 안 명인은 “덖음을 제대로 한 차는 구수한 맛이 나지만 자칫 잘못하면 풋냄새가 나거나 차가 붉게 변한다”며 “찻잎 하나하나 손끝으로 촉감을 느껴가며 정성 들여 만들어야 깊은 맛이 나는 녹차 한잔을 우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성=서지민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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