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황촌마을 공유주방 가보니
2020년 도시재생사업 통해
구옥 정비와 공유주방 신축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 진행
주민·고령층 참여 늘어 활기
전통주·마을호텔 창업자 등
초기 투자비용 줄여 큰 도움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유주방은 지역공동체 활동의 주무대가 된다. 특히 고령층이 많은 동네에서는 어르신 돌봄 역할을 한다. 마을기업의 모태가 되는 곳도 있다. 공유주방을 중심으로 마을 활성화에 나선 경북 경주 황촌마을에 갔다.
“자, 물에 불린 다시마를 꺼내 물기를 탈탈 털고 양념장에 담가주세요.”
조리대 앞에 선 선생님이 잰 손길로 시범을 보인다.
“다진 고추를 지금 넣을까요?”
“양념장 맛이 이상한데 간을 좀 봐주세요.”
선생님을 따라 곧잘 움직이던 수강생들이 이내 질문을 쏟는다. 몇몇은 칼 대신 펜을 쥐고 설명을 받아 적느라 바쁘다. 요리 수업이 한창인 이곳은 황촌마을에 있는 공유주방이다. 말 그대로 동네 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이다. 52㎡(16평) 규모 단층 한옥 건물로 대형 조리시설과 식탁을 갖췄다. 여느 카페 못지않은 모습으로 이곳에선 매주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날엔 ‘생각부엌’이라는 제목을 단 약선음식 수업이 열렸다.
옛 경주역 폐철로와 문화유적지인 전랑지 사이에 있는 황오동·성동동은 열악한 접근성 탓에 오랫동안 개발되지 못했다. 주거환경이 취약해져 인구가 줄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 2020년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이 시행됐다.
‘황촌’이라는 새로운 마을명을 걸고 인프라 확충과 구옥 정비에 나섰다. 마을회관 격인 마을활력소 세곳도 지었다. 공유주방 신축 역시 재생사업 일환이다.
폐가를 헐고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시설을 마련하자 집 대신 공유주방에서 손님을 맞거나 음식을 장만하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또 다채로운 요리 수업도 열렸다.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황오동은 거주민의 70%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홀몸어르신도 꽤 많다. 일손을 주고받는 농촌지역이 아니다보니 이웃간 왕래가 별로 없는 편이라 공동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공유주방을 거점으로 주민간 교류가 활발해졌다. 시설을 위탁·운영하며 공동체사업을 이끄는 ‘행복황촌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의 민대식 센터장(49)은 “집에만 계시던 어르신들이 자주 외출하시고 표정도 한결 밝아지셨다”고 변화를 알려줬다. 47년째 황오동에 거주하는 박화월씨(82)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공유주방에 놀러 나간다”면서 “나이가 들수록 이런 공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마을기업을 키워내는 토대가 된다는 점이다. 수제 막걸리 사업을 준비하는 정수경씨(50)는 공유주방이 없었다면 창업을 꿈꾸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정씨는 이곳에서 전통주 제조 수업을 들었다. 몇달 동안 노력한 끝에 자신만의 비법을 찾았다. 마을명 ‘황촌’을 넣은 이름을 붙여 지역 막걸리로 판매할 계획이다. 사업장을 마련하는 비용이 꽤 부담스러웠는데 공유주방이 있어서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씨는 “공유주방이 넓고 깨끗해 막걸리를 제조하기에 딱”이라면서 자신감을 내보였다.
마을호텔을 창업하려는 이들에게도 공유주방은 없어서는 안될 요소다. 지난달 주민 20명이 100만원씩 출자해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1인가구가 사는 주택에서 남는 방을 마을호텔 객실로 이용할 생각이다. 공유숙박 업체인 에어비앤비처럼 빈방을 공유하는 형태다.
숙박객을 받으려면 잠잘 곳뿐만 아니라 음식이나 먹을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공유주방이 숙박객을 위한 호텔 주방이 되는 셈이다. 개별 주방을 설치해야 하는 부담을 공유주방으로 해소했다. 장기적으로는 지역민과 이익을 나누고자 마을호텔·주방 손님이 지역에 있는 카페나 식당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주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공유주방이나 공유숙박 같은 창업 형태는 인구가 줄거나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빈 건물을 활용하면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고 자연스레 도시 미관도 개선할 수 있다. 자연스레 주민간 소통을 이끌어내는 효과도 생겨 공동체 협력을 통한 마을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농촌도 ‘공유’에 주목해야 할 때다.
경주=지유리 기자, 사진=김건웅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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