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9일이 흘렀다. 보통 불교에서는 망자가 사망한 지 49일이 흐르면 49재를 지낸다. 망자는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49일 동안 중음(中陰:죽은 후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기간)의 상태를 맞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다음 생을 받을 연이 정해지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선 희생자 추모 위령제가 봉행됐다.
49일은 100일의 절반에 가까운 기간이지만 아직 이태원 그곳에서는 떠나간 이들을 잊지 못하는 그리움과 사무침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참사로부터 49일=“아니, 해밀톤호텔이 어디에요?” 답답해하는 목소리에 호텔 투숙객인가 싶어 “바로 옆”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아니, 그럼 여기 이 골목에서 참사가 발생한 거에요?” 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동안 뉴스에서만 봐왔던 참사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전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까지 시민들이 이태원을 찾아왔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화중(66)씨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냐”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경북 칠곡에 거주하는 이화평(34)씨는 “잊기 싫어서 왔다”며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로셀라(45)씨는 “사흘 후엔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전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임파서블(불가능·Impossible)’를 반복하며 눈물을 내비쳤다.
◆곳곳엔 추억과 사연 가득한 포스트잇=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발생한 날로부터 49일이 흘렀다. 해밀톤호텔 골목길에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빼곡이 붙여져 있었다. 형제·자매·부모부터 이모·사촌·친구· 이웃사촌까지 희생자가 생전 맺어왔던 수많은 인연들이 추억을 되씹고 있었다. 포스트잇이 바람에 날아갈까 테이프를 여러겹 덧붙이는 사람도 있었고, 붙일 공간을 찾느라 까치발을 들고 이곳저곳을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

희생자 총 158명 가운데 외국인도 26명이나 있던 까닭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가 쓰여진 포스트잇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기억은 남겨진 자들의 몫…시민추모제=어스름한 어둠이 찾아오자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작은 촛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시민추모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정의평화위원회·원불교·교정원·천주교·예수회·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의 종교의식으로 시작했다. 이어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대표 발언이 이어졌다.

“아직도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원통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한 이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과 고통은 더욱 커져만가고 있다”며 “누구는 밥 먹으러 갔다가, 회의하고 나오다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다가, 친척집에 왔다가 그 골목으로 그냥 지나갔을 뿐”이라며 “국가는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희생자 한명 한명의 이름과 사연이 큰 스크린에 나올 때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중간중간 목멘 울음과 절규가 터져나왔다.
“동생아, 친구들이 나를 다 알더라. 언니 자랑 많이 했다며. 나도 너 자랑 많이 했어. 미련 가지지 말고 가더라도 가끔은 언니 보러와줘. 언젠가는 언니 자식으로 꼭 찾아와줘. 영원히 사랑한다.”
“엄마가 용기를 내서 이 많은 사람들 앞에 편지를 읽고 있어.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 일은 우리 아들딸을 낳은 거란다. 내 곁에 자식이 없는 생각은 단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다음날 10시쯤 알게 됐어.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핼러윈 때 앨리스 복장을 한 멋쟁이 언니야. 치아보다 더 밝아 보이는 언니의 잇몸이 가끔 생각나. 언니의 모든 모습은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이 없어. 우리가 욕심내는 건 그날만큼은 언니가 많이 웃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거야. 언니 생일엔 언니가 좋아하는 석화를 먹을까 해. 잠깐 앉았다 갈래?” 등 아직 희생자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유가족들의 절절한 마음이 스크린을 타고 전해졌다.
영하 6도의 추위에도 시민추모제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다. “힘내세요” “기억할게요” 라는 목소리가 잦아짐과 동시에 오후 6시부터 시작한 시민추모제도 오후 9시경에 마무리됐다.
이유정 기자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 게시판 관리기준?
-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 농민신문
- 페이스북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