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평생 농부로 살기 위해 ‘작목 다양화’ 도전했죠”

입력 : 2022-10-26 00:00

[가족농 열전 백년 농부] (18) 뜨르르농장 손인호씨

대대손손 삽교읍 지켜온 쌀농가 집안

2010년 태풍 곤파스 피해로 살림 휘청

다른작목 재배 시작…연중 수익 올려

영농기술 갈고닦고 청년농 멘토활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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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뜨르르농장의 손인호(위)·이재순씨 부부가 벼 수확을 하고 있다. 예산=현진 기자

“할아버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도 학창시절 가족 일을 돕다가 자연스레 농부가 됐고요. 처음엔 쌀만 재배했다가 2010년부터 점차 작목을 다양화했습니다.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 주도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입니다.”

충남 예산 뜨르르농장의 손인호씨(51)는 2010년을 자기 인생의 변곡점으로 꼽는다. 그해는 태풍 ‘곤파스’가 우리나라를 휩쓴 때다.

손씨네 집안은 대대로 삽교읍을 지켜온 쌀농가다. 한창때는 논 23만㎡(7만평)가량을 일궜다. 그 시절엔 국내 쌀 소비가 원활해 수도작만으로도 일가가 배불리 먹고살았다. 지역에서 대농으로 손꼽히며 탄탄대로를 걷다 태풍 피해를 봤다.

며칠간 수마가 논을 덮쳤다. 채 익지 못한 벼가 쓰러졌고 말 그대로 한해 농사를 망쳐버렸다. 가을철 제대로 수확을 못하니 수익이 쪼그라들었고 곧바로 살림이 휘청거렸다. 아무리 농부가 천직이래도 안정적인 소득이 없으면 일을 지속할 수 없다. 손씨는 지금처럼 쌀만 믿고 있다간 언제든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 끝에 그가 찾은 돌파구가 바로 ‘작목 다양화’다. 평생 농부로 살려면 일년 내내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야 하고 그러려면 쌀과 작기가 다른 작물을 키워야 한다. 손씨는 곧바로 밀을 도입했다. 벼와 이모작이 가능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밀은 벼베기 후 파종하고 이듬해 6∼7월에 수확한다. 절묘하게도 쌀을 판 돈이 떨어져갈 때쯤 가계 버팀목 역할을 하기에 딱이다. 그렇게 시작한 규모는 시나브로 늘어나 16만5000㎡(5만평)에 이른다. 쌀농사(9만9000㎡)보다도 크다.

손씨네 농장에선 봄부터 가을까지 거래가 이뤄진다. 봄철 대표 상품은 육묘다. 육묘 전용 하우스만 다섯동이다. 판매는 지역농가를 대상으로 한다. 이어 밀을 수확하고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콩·깨·쌀이 나온다. 농한기인 겨울철에는 참기름·들기름·밀가루 같은 가공식품을 제조해 판다. 12년 전 꿈꿨던 대로 연중 고르게 수익을 거두고 있다. 여전히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로 흉작이 들 때가 있지만 큰 걱정은 없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듯, 큰 위험을 여러 작목이 나눠 가진다. 덕분에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농장은 튼튼히 버틸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물 흐르듯 이뤄진 것은 아니다. 초기엔 아버지의 반대가 대단했다. 멀쩡한 쌀을 두고 다른 작목에 눈을 돌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어휴, 왜 쌀농사를 줄이고 애먼 데 신경을 쏟느냐며 꾸짖으셨죠. 게다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아버지 눈엔 사서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무엇보다 영농기술이 부족해 시행착오가 많았다. 판로를 개척하기도 쉽지 않았다. 3년차까지는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적자가 나기도 했다.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이 역시 아버지였다. 결국 아들 뜻을 받아들여 적극 밀어준 것. 나중에는 영농을 함께하기도 했다. 비슷한 고민을 지닌 지역 선후배도 그의 든든한 뒷배가 돼줬다. 작목반을 꾸려 같이 배우고 시범포·채종포를 일구면서 기술을 갈고닦았다. 판로를 공유하면서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손씨는 시설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작목별로 전용 수확기와 건조기 등 농기계를 사들였고 창고도 따로 지었다. 군농업기술센터를 자주 오가며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선도하려면 돈과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최근엔 재배한 밀을 저온가공해 빵 만들기에 적합한 밀가루를 생산했다.

함께하면서 문제를 극복한 경험을 했기에 손씨는 청년농부를 위한 멘토활동에도 열심이다. 귀농인 대상 교육도 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사업의 시범농가로도 빠지지 않는다.

“시골에선 이웃들이 다 같은 일을 하잖아요. 옆 사람한테 배우고 또 가르쳐주면서 함께하는 거죠. 돌아보면 그 덕분에 시행착오도 덜 했고 빨리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제2의 인생을 찾아 귀농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영농기술보다는 지역에서 잘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곧 대대손손 백년 농부가 되는 길이거든요.”

예산=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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